한강변 '미끄럼틀 아파트'의 비밀…'기형적 건물' 이젠 사라진다?[부릿지]

머니투데이 김효정 기자, 이상봉 PD | 2024.08.14 05:10
올림픽대로를 지나다 보면 천호대교 인근에 시선을 강탈하는 삼각형 모양의 아파트를 볼 수 있다. 사선으로 잘린 것처럼 보이는 외관이 대형 미끄럼틀을 연상시켜 '미끄럼틀 아파트' 또는 '스키장 아파트'라고 불리는 이 아파트는 1998년 지어진 송파구 풍납동 씨티극동아파트다. 이렇게 기이한 디자인이 탄생한 건 특별한 건축적 의미도, 바이럴 마케팅 전략도 아닌 '이 규제' 때문이다. 씨티극동아파트 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이 규제 때문에 생겨난 기형적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규제에 발목잡혀 개발되지 못하는 건물들이 도심 노후화를 야기하면서 서울시도 이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풍납동 일대 아파트에도 재건축 길이 열리게 되는데, ☞머니투데이 부동산 유튜브 채널 '부릿지'가 풍납동 씨티극동아파트를 직접 방문해 이같은 아파트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전망에 대해 알아봤다.


"문화재 조망 절대 지켜" 규제가 만들어낸 기형적 건물들


1998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어쩌다 이런 외관을 갖게 됐을까요. 건축가의 실험정신? 우리 아파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

다 아니고요. 시시하지만 규제 때문입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규정 중에는 '앙각 규제'라는 게 있습니다. 문화유산 경계 지점에서 올려다본 각(앙각)에 27도로 선을 그어 그 아래로만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규정입니다. 문화유산의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인데요.

서울시는 국가지정유산 경계의 100m 이내 건물에 대해 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앙각 27도를 재는 기준도 달라요. 사대문 안의 국가지정유산는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27도를 지켜야 하고요. 사대문 밖의 국가지정유산과 서울시 지정유산은 문화유산의 외곽경계 지표에서 7.5m 높이를 기준으로 27도를 잽니다.

씨티극동아파트 인근에는 1963년 국가지정유산으로 지정된 풍납토성이 있죠. 백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건물지 등 유구와 수만 점의 유물이 출토된 곳입니다.

이 풍납토성 성벽 끝의 100m 이내에 들어선 건축물에 앙각규제가 적용됩니다. 그러다보니 성벽과 가장 가까운 건물을 7.5m 높이로 세우고 그 기준으로 27도의 사선에 맞춘 건물을 세우다 보니, 짜잔. 이런 삼각형 모양의 미끄럼틀 아파트가 탄생하게 된 거죠.

씨티극동아파트는 극단적인 예시지만 실제로 서울 곳곳에서 앙각규제가 적용된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청이 있죠. 청사 인근에 덕수궁을 기준으로 앙각규제가 걸리는 바람에 당초 지상 21층으로 계획됐던 설계가 무산되고 현재의 14층으로 대폭 낮춰졌습니다. 종로3가에서도 인근 종묘 앙각규제 때문에 탄생한 독특한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 "앙각규제가 도심 개발 제한"…풍납동 재건축 길 열리나


다시 풍납동으로 돌아올게요. 이 일대 아파트들은 그동안 풍납토성으로 인한 규제 때문에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건물을 고층으로 올릴 수 없다 보니 사업성이 떨어져 사실상 재건축이 불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국가유산청이 풍납토성 내 첫 재건축 주자인 '풍납미성아파트'의 재건축 허가 신청에 '조건부 가결' 결정을 내렸습니다. 앙각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최고 23층으로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을 허가한 거죠. 대신 착공 전 매장된 유산을 시굴조사하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여기에 서울시도 힘을 보태는 모양새입니다. 시는 최근 '풍납토성 보존 관련 규제 영향분석'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한편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매력도시 서울'을 주제로 도시공간정책 컨퍼런스를 열고 규제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신윤철 서울시 도시재창조과장은 이 자리에서 획일적인 앙각 규제로 주변 경관이 오히려 부조화를 이루고 정비 걸림돌로 작용해 도심 노후화를 야기한다고 지적하면서 "앙각규제를 개선해 도심과 문화유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풍납토성 인근에는 씨티극동아파트를 비롯해 한강극동, 동아한가람 등 재건축 연한이 곧 도래하는 아파트가 밀집돼 있습니다. 규제 완화 조짐에 풍납미성아파트 재건축에도 파란불이 켜지면서 풍납동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이는데요.

시선 강탈 삼각형 아파트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규제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던 한강변 이 동네가 또 어떻게 바뀔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머니투데이 부동산 유튜브 채널 '부릿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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