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는 이제 배급 기능마저 상실하고 자본주의나 다름없는 장마당 체제로 운영된다. 여기서 달러나 위안화로 식량이 거래된다. 주민 생계 유지 수단이자 정권 외화 확보 수단이다. 탈북자들의 대북 달러 송금이 묵인되는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에 친지가 있으면 사정이 낫지만, 이 도움이 끊기면 역시 속절없이 생존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북·중 간 올 상반기 무역 데이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중국 관세청 격인 해관총서를 인용, 중국의 상반기(1~6월) 대북한 쌀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7%로 급감(5339만달러→571만달러)했다고 전했다.
쌀뿐 아니다. 밀가루 수출은 작년의 23%(1801만달러→415만달러)로 줄었다.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와 농업생산에 꼭 필요한 질소비료 수출은 각각 작년의 1.3%, 0.3% 수준에 머물러 사실상 완전 중단됐다.
기타 HS코드 중 유엔(UN) 안보리가 대북수출을 금지한 제품 수출은 약 3만8864달러로 우리 돈 약 5000만원어치에 그쳤다. 작년 상반기엔 그 열 배인 35만5355달러어치가 수출됐고, 하반기엔 다시 그 7배에 가까운 223만7362달러어치가 수출됐었다. 무역으로만 보면 올 상반기에 북·중 국경은 사실상 닫혔다.
해석은 두 가지다. 중국이 서방 제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 지원을 서류상 축소시켰다는 게 첫 번째다. 근거가 약하다. 중국의 식량지원은 '고난의 행군' 이후 계속돼 왔던 양국 동맹의 상징이다. 최근 중국 대북지원이 새삼 문제된 경우도 없다. 굳이 숫자를 조작할 이유가 없다.
무게가 실리는 건 최근 러시아를 중심에 두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북·중 관계 반영 해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러차례 중국을 찾아 지지 호소 겸 우군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기 지원도, 공식 전쟁 지지 메시지도 없다. 러시아가 느끼는 서운함의 징후는 차고 넘친다. 이 틈을 파고 들어 러시아와 밀착한 게 북한이다.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공급했다.
러시아도 화답했다. 올 상반기 북한에 1200톤 가량 밀가루를 신규 수출했다. 드러난 숫자는 우리 돈 약 4억원어치로 많지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 적더라도 북한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다. 한 줌 영향력으로 줄타기를 시도하는 북한을 손봐주려는 중국 입장에선 북·러의 행보가 얄밉다. 가뜩이나 미국 트럼프 정권 재탄생 후 북·미 관계까지 신경써야 하는 중국이다. 로드먼이 또 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고난의 행군 시기 무너질 뻔한 북한 정권을 지탱한 게 중국의 식량지원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명나라 관계와 비견하며 신 재조지은이라 할 정도로 의미가 크다. 그런 식량지원을 끊는다는 건 '너희 정권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북·중 갈등을 흔히 '칼로 물 베기' 격인 부부싸움에 비유하는데, 물이 아닌 살을 베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얼마 전 한 북한 외교관이 3000만달러(약 415억원)에 달하는 김정은 비자금을 갖고 중국을 통해 제3국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외교인력 동선은 안면인식 CCTV로 실시간 파악하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통로'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은 다른 북한 외교관들을 밀수 혐의로 조사하기도 했다. 역시 이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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