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닦아도 될까?…'형광물질 2000배' 화장지, 손 놓은 정부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4.08.12 17:19
베트남산(왼쪽), 국산(가운데), 중국산(오른쪽) 원단으로 만든 화장지에 UV(자외선)를 비춘 모습. 형광증백제 함량이 높은 베트남산, 중국산 화장지가 형광색으로 빛난다./사진=김성진 기자.
수입산 위생용지의 '국산 둔갑'은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협해 문제다. 특히 최근 국내에 물밀듯 들어오는 중국산 원단에서 형광증백제가 대량 검출되지만, 이를 검출할 마땅한 절차가 없어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본지가 중국산, 베트남산 원단으로 제조했지만 '국내산'으로 표기돼 시중에 유통되는 점보롤 제품 두개를 구매해 국내의 한 위생용지 원단 제조사의 제품실험실에서 UV(자외선) 검사를 진행한 결과 두 제품 모두 형광색으로 빛나는 것이 확인됐다. 반면 대조군으로 국산 원단으로 만든 화장지를 실험한 결과 아무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UV검사에서 형광색으로 보이는 것은 형광증백제 차이에서 비롯된다. 형광증백제 검출량이 국산은 0.01~0.03mg/L이었지만, 베트남산은 50mg/L, 중국산은 60mg/L으로 국산보다 1500~2000배 많았다. 수입 원단 위생용지의 검출량은 일반적인 A4용지(80mg/L)에 가까웠다.

위생용지 속 형광증백제는 원단을 제조할 때 펄프에 종이자원(폐지), 특히 폐 A4용지를 혼합하는 경우 주로 검출된다. 하지만 베트남산, 중국산 검출량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게 업계의 판단이다. 30년 이상 위생용지 원단 제조업에 종사한 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면 형광증백제를 들이부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형광증백제는 화학구조가 다양해 모든 증백제가 유해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국산 A4용지와 셔츠, 속옷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증백제는 화학구조상 무해하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피부에 오래 접촉할 경우 아토피, 피부염 등 각종 피부질환뿐 아니라 입술을 닦아 섭취할 경우 장염 등 소화기질환과 암까지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물질로 인지한다. 외국산 화장지 원단은 수입해 가공하는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검사하게 돼 있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내 원단업계가 모인 한국제지연합회 위생용지위원회는 올초 위생용지의 주무관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형광증백제를 3급 위험물질로 지정할 당시 위해성에 따라 증백제를 코드화해 관리할 것과 식약처가 수입산 원단의 형광증백제 검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검토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현재 펄프 가격이 상승해 국내에는 중국에서 폐 A4용지를 혼합해 제조한 화장지 원단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의 화장지 원단 밀어내기 수출이 많아지며 올 상반기 중국산 화장지 원단 수입량은 2만7000여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2.6배 늘었다.

검증되지 않은 화장지 원단 수입 증가는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재활용촉진법상 재생 위생용지를 우선구매할 의무가 있는 학교와 공공병원, 공공요양원 등의 위험노출 빈도가 높아진다. 조달청도 수입산 대신 국내산 원단으로 만든 화장지를 구매하고 싶지만 수입 위생용지가 국산으로 둔갑하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위생용지 원단업계 관계자는 "결국 돌고돌아 위생용지의 올바른 원산지 표기가 중요하다"며 "수입산 위생용지가 국산으로 둔갑하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형광증백제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관련 기사 : [단독]'한국산' 둔갑한 中·인니 휴지…관세청, 단속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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