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끼' 밥 먹으려 새벽 4시부터 줄…탑골공원 앞 땡볕엔 500명이[르포]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 2024.08.13 05:30

서울 종로3가역 무료 급식소, 월 운영비 2년새 400만 이상↑…"일부 후원 멈추기도"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한 고령자들이 도착 순서대로 바닥에 소지품을 내려 놓은 모습. 폭염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직접 줄을 서는 대신 소지품을 늘어 놓은 것이다. /사진=정세진 기자
"재작년까지만 해도 한달에 2000만원 정도면 운영할 수 있었어요. 요즘은 한달에 많게는 2800만원이 들어요."

고영배 사회복지 원각 사무총장은 여름철이 오면 고민이 깊어진다. 장마철 채솟값 폭등 때문이다. 봄철 한 상자에 3만~4만원이던 상추가 여름장마 때면 12만원까지 치솟는다. 올해는 장마 이후에도 폭염이 이어지면서 청양고추, 풋고추, 오이, 알배기 배추, 시금치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전기요금과 각종 공과금 오름세도 무섭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 무료급식소들이 폭염과 물가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례적인 폭염으로 식자재 값이 오르면서 운영비 부담이 커진 데다 80대 이상 어르신이 대다수인 급식소 이용자 건강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물가상승은 식자재 가격 부담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 사무총장은 "물가 때문에 생활이 팍팍해져서 그런지 후원을 멈춘 정기 후원자들이 있다"고 털어놨다. 후원이 줄어들면 현재 280인분인 식수 인원을 유지하기 위해 한끼 식사 제공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고 사무총장은 "최대한 집에서 드시는 한끼처럼 제공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동국대학교행정대학원총동문회 회원들이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급식소 이용자 안전은 또다른 고민거리다. 이날 서울 지역 최고 기온은 34.4도를 기록했다. 땡볕 아래 급식소 대기줄은 탑골공원 정문에서 종로2가 지구대를 지나 택시정류장까지 퇴약볕 아래 두줄로 40m 이상 늘어섰다.

이용자들 대부분이 대기줄은 가방이나 의자, 소지품으로 대체한다고 하지만 잠깐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에 멀리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근처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복지 원각 관계자는 "오늘 80대 정도 되는 어르신이 열사병 증상을 보여서 급하게 실내로 모셨다"며 "안정을 취하게 도와드리고 안전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탑골공원에서 서울시가 아리수를 나눠주지만 물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온 고령자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 온 고령자들에게 아리수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사회복지 원각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에선 온열 질환 예방을 위해 90세 이상 이용자들에게는 신분증을 확인한 후 패찰을 나눠준다. 패찰을 단 이용자는 대기 없이 바로 식사할 수 있다. 하루 평균 이용자 270~300명 가운데 90세 이상은 25~30명 정도다.

폭염을 뚫고 무료급식소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고물가의 또다른 단면이다. 탑골공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은 새벽 4시부터 줄을 선다. 오전 10시쯤 와도 식사는 할 수 있지만 새벽 4시부터 오는 이유는 근처 무료 급식소를 모두 이용하기 위해서다.

근처에는 주먹밥을 나눠주는 무료 급식소가 한 곳 더 있다. 새벽부터 나와 주먹밥과 도시락을 챙기고 원각사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으면 세끼를 해결할 수 있다.

서울 외에도 지하철 1호선이 지나는 인천, 충남 천안 등지에서 탑골공원까지 오는 이용자들도 있다. 인천 청라에서 왔다는 박모씨(88·남)는 "오늘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며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여기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근처에 병원에 들렀다 집에 간다"고 했다.

12일 인천 청라에서 온 박모씨(88·남)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오전7시에 도착해 받은 원각사 무료급식소 번호표.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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