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녀자 살인' 과학수사 뒷받침한 경찰…우리동네 서장으로 돌아왔다

머니투데이 김미루 기자 | 2024.08.15 07:00

[우리동네 경찰서장(24)]고영재 서울 동대문경찰서장 "세심하고 과학적 분석, 신속한 피해 회복 수단"

편집자주 | 형사, 수사, 경비, 정보, 교통, 경무, 홍보, 청문, 여청 분야를 누비던 왕년의 베테랑. 그들이 '우리동네 경찰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행복 가득한 일상을 보내도록 우리동네를 지켜주는 그들. 서울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연일 구슬땀을 흘리는 경찰서장들을 만나봅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고영재 서장. /사진=최지은 기자

#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깁니다."

지난해 3월29일 밤 11시45분쯤 강남구 한 아파트 앞에서 40대 여성이 남성 2명에게 납치됐다. 남성들은 여성을 끌고가 승용차에 강제로 태웠다. 남성들은 여성을 살해하고 대전 대덕구 대청댐 인근 야산에 매장했다. 이들은 이틀 뒤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을 제안한 주범 이경우도 검거됐다.

'강남 부녀자 납치 살인사건' 수사는 과학수사를 통해 여러 변곡점을 만났다. 과학수사요원들은 먼저 사체 위치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피의자 진술을 기반으로 늦은 밤 시간 드넓은 대청댐 인근 야산 어딘가에서 유기된 사체를 찾아냈다. 부검에서는 마약류 마취제가 검출됐고 이경우 부인이 간호사로 일하던 성형외과 압수수색으로 수사가 확대됐다. 경찰은 범행 일당의 차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피 묻은 고무망치, 주사기 등 의미있는 증거물도 발견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초동 수사에서 과학수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절차를 꼼꼼히 밟으면서도 증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공소 유지를 통해 같은 해 주범 이경우 등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형사소송 과정에서 현장 미세 증거 수집, 프로파일러 투입, CCTV(폐쇄회로TV) 분석, DNA 분석 등 종합적인 과학수사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경찰 경험, 데이터로 증명한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고영재 서장. /사진=김미루 기자

이같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 해결을 과학수사로 지원한 이가 올해 동대문경찰서장으로 돌아왔다. 고영재 동대문서장 이야기다.

고 서장은 △2016년 경찰청 범죄분석담당관실 과학수사운영계장 △2020년 전남경찰청 과학수사과장 △2023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장을 맡으며 실력을 쌓았다. 강남 살인 사건 외에도 고유정 살인, 안인득 방화 살인, 신림역 살인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전문 과학수사요원들을 투입해 수사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고 서장은 동대문서에 부임한 이후에도 경찰의 과학수사기법을 적극 활용한다.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육감을 넘어서 112 신고 건, 사건 접수 건에 이르는 과학적 데이터를 향후 범죄 예방, 범인 검거, 경력 배치에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경찰청이 개발한 지리적프로파일링(Geo-Pos)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범행이 발생한 현장들의 지리적 연관성을 분석해 범인을 추론하는 수사 기법이다. 범인이 거주하고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장소를 추정하고 해당 장소를 중심으로 용의자를 추적한다. 전국 경찰서별·파출소별 범죄 다발지, 범죄 시간·수법, 범죄자 연령대 등을 분석해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다.


고 서장은 "경찰이 보유한 공공·민간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경찰 개인이 경험으로 인식했던 것을 데이터로 증명하면 신뢰성과 믿음을 주민들에게 줄 수 있어서 정책의 설득력이 생긴다"고 했다.

성과도 나타났다.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5월 보이스피싱 범죄를 시작으로 국내에 마약까지 유통한 국내 총책 등 27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국내 7개 지역에서 중계기 581대를 두고 대규모로 조직을 운영했다. 범죄는 모두 비대면으로 이뤄졌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과 중계기를 사용했다. 수사를 통해 사무실 등 현장 300곳 이상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적 수사를 통해 다음 범죄 발생지를 예측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이 수행하는 세심한 증거 조사와 과학적인 진술 분석은 신속한 피해 회복의 수단"이라며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형사소송법의 과제를 달성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수법을 활용해 마약도 함께 유통한 혐의를 받는 일당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뉴시스


'공동체 치안 완성', 지역사회 연계로 푼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동대문경찰서 전경. /사진제공=동대문경찰서
동대문구는 서울 부도심으로 노년층 인구가 많다. 현재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 비율이 전체 구민 19.83%에 이를 정도다. 경희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 대학도 자리했다. 20대 1인 가구 수는 서울시 3위 규모다. 외국인 유학생은 7600여명이 거주한다.

다양한 주민이 거주하는 만큼 동대문서는 범죄 예방을 위해 지역 사회와 협력하고 있다. 올해 동대문구청과 함께 대학가 인접 휘경동을 중심으로 범죄 예방 인프라 구축 사업에 나섰다. 철길 주변에 조도를 개선해 보안등을 새로 설치한다. 서울시로부터 예산 1억7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동대문서는 서울시립대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 순찰대'를 운영하기도 한다. 동대문서 범죄예방진단팀이 112 신고 건 등을 분석해 범죄 위험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관내 파출소가 캠퍼스 순찰대와 함께 정기 순찰에 나선다.

지역사회 안전망도 확장해나가고 있다. 고 서장은 지난 7월 범죄피해자 통합 지원을 위해 소나무센터, 가족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서울시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서울북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5개 유관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고 서장이 올해 초 취임사에서 "공동체 치안을 완성하기 위해 지역사회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대로다. 1996년 경찰에 입문해 동대문경찰서에서 새내기로 근무했다는 그는 "경찰의 존재 이유는 국민 보호"라며 "사회적 약자인 노인, 여성, 아동, 장애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보다 안전한 동대문구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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