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인텔이 파업나선 삼성전자에게...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4.08.13 05:30

[선임기자가 판다]

팻 겔싱어 인텔 CEO/사진제공=인텔
"지금 인텔코리아도 인텔 본사의 정책에 따라 이번 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일(현지시간) 팻 겔싱어 인텔 CEO가 2024년 2분기 실적을 공개한 직후 전세계 인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는 강력한 구조조정의 메시지가 담겼다. 올해 안에 전체 직원의 약 15%인 1만 5000명의 인력을 줄이고, 2025년에는 100억달러(한화 약 13조 65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7일 인텔코리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국내에서도 희망퇴직 접수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인텔의 2024년 2분기 매출은 128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 줄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억달러 흑자에서 19억 64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기대했던 파운드리에서는 적자가 늘었고, AI(인공지능) 시장 성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실적 악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올해 4분기까지는 배당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지난 2일 인텔의 하루 주가는 50년만에 최대인 26.06% 폭락했다.

지난 8일에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인텔의 선순위 무담보채권 등급을 기존 A3에서 Baa1로 하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왕좌를 차지했던 반도체의 원조 인텔은 2006년과 2016년 이후 또 한번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인텔의 변화가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다퉜던 삼성전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팻 겔싱어 CEO가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와 이를 통해 삼성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또 겔싱어의 잣대를 삼성전자 반도체에 들이대면 어떨까? 인텔의 눈으로 본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쟁력을 따져봤다.



돌아온 잡스를 기대했던 인텔...팻 겔싱어 실험의 실패


크레이그 배럿 CEO의 취임시기는 1998년이나 통계 기준 시점이 2000년이어서 2000년에 표기함. 2023년 매출은 542억 2800만달러, 영업이익은 9300만달러임./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2009년 인텔을 떠났던 팻 겔싱어가 12년만인 2021년 친정 인텔로 돌아왔을 때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1997년 무너져가는 애플에 12년만에 되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연상됐다. 또한 잡스가 보여준 '부활의 신화'를 겔싱어가 인텔에서도 보여줄 것이라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결과는 겔싱어는 잡스가 아니라는 결론만 보여줬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인 애플에 돌아와 이듬해에 4억 달러 흑자로 전환한 것과는 달리 팻 겔싱어의 인텔은 그가 취임한 후 실적이 급락했다. 겔싱어가 CEO를 맡기 전인 2020년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78억 6700만달러, 236억 7800만달러였던 것이 3년만인 지난해 542억 2800만달러와 9300만달러(순이익은 16억 7500만달러)를 기록해 각각 30.4%와 99.6% 급락했다.

겔싱어 CEO는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와 밥 스완 등 전임 CEO들이 망쳐놓은 기술 선도기업 인텔의 정신을 살리는데 혼신의 힘을 썼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AI 열풍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했다.
자료: 인텔 사업보고서 취합/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1969년 삼성전자와 같은 해에 설립된 인텔은 PC 초기 시장에 이어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시대에도 강자의 자리를 유지했지만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성장곡선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인텔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가 2009년부터 쿼드코어 프로세서로 PC 시장 성장세를 맞았고, 2015년 이후 클라우드 컴퓨딩의 붐을 타고 데이터센터 시장이 커지면서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빠른 추격과 2022년에 출시된 챗GPT를 필두로 한 AI 시대에 대응이 늦어지면서 엔비디아의 GPU(Graphics Processing Unit)에 시장을 내주고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인텔의 진짜 위기는 팻 겔싱어의 귀환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인텔은 2004년 크레이그 배럿 CEO를 끝으로 사실상 창업가의 시대가 끝나면서 폴 오텔리니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밥 스완 CEO까지 혁신보다는 수성에 급급했다. '인텔이 가는 길이 곧 IT 기술의 진화 방향'이었던 시대에서 그들도 이제는 애플이나 구글, 엔비디아, TSMC 등의 뒤를 따르는 추격자가 되면서 실적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밥 노이스,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 등 발명의 시대를 풍미했던 인텔의 전설들이 사라지고 마케팅과 재무전문가들이 CEO를 맡으면서 인텔의 혁신은 사라졌고, 인텔의 브랜드였던 인텔 개발자 포럼(IDF) 마저 중단되면서 인텔의 추종자들마저 떠났다. 인텔의 구원투수로 나선 겔싱어가 CEO에 복귀하면서 처음 부활시킨 것이 IDF의 이름을 바꾼 '인텔 이노베이션' 행사였지만 이마저도 비용 때문에 올해 중단하기로 했다.



인텔이 구조조정에 나선 진짜 이유


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
팻 겔싱어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인텔이 구조조정에 나서게 된 이유는 예상보다 매출이 성장하지 않았고 AI와 같은 강력한 추세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해 비용은 너무 높고 마진은 너무 낮은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과거 예상했던 것보다 올해 하반기가 재무적으로 더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인텔이 종합반도체회사(IDM) 2.0 계획을 내놓으면서 자체적인 첨단 제품 생산 외에도 최고급 파운드리 기술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파운드리 매출은 늘지 않았고, 적자규모는 더 커졌다. 지난 2분기 인텔의 파운드리 매출은 전분기보다 1억달러 줄어든 43억달러, 영업적자는 3억달러가 더 늘어난 28억달러로 내려앉았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은 100달러어치를 팔면 65달러가 손해나는 장사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업계 2위가 되겠다는 꿈은 멀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AI 분야도 같은 기간 매출은 30억달러로 정체됐고 이익은 전분기보다 2억달러 줄어든 3억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겔싱어 CEO는 실리콘밸리 도전정신의 선봉이었던 인텔이 초심으로 돌아가 반도체 혁신기업으로서 고성능 파운드리와 설계 기술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경쟁력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AI 바람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해 비용과 사람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인텔코리아 관계자는 "특히 엔비디아가 GPU 시장에서 빠른 성장을 하면서 글로벌 IT 기업의 투자 자금이 대거 GPU 쪽으로 몰렸다"며 "이로 인해 인텔의 CPU 등의 매출이 줄어들어 실적에 크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연간 투자금액은 한정돼 있는데 AI 붐으로 인해 투자가 GPU 쪽으로 몰리면서 인텔의 CPU 주요 매출처가 투자를 줄였다는 얘기다.



인텔의 잣대로 본다면 삼성전자는…


삼성전자는 매출이나 영업이익의 등락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전세계 직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자료=삼성전자 사업보고서 및 연차보고서 취합/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겔싱어 CEO는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에 "2020년 연간 매출은 지난해(2023년보다) 240억달러 더 높았지만, 현재 인력은 그때보다 10% 이상 더 많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인텔 매출은 2023년 542억 2800만달러로 2020년(778억 6700만달러)보다 30.4% 줄어든 반면 전세계 종업원수(스톡애널리시스 기준)는 2023년 12만 4800명으로 2020년(11만 600명)보다 12.8% 늘었다. 고비용 저수익 구조다. 인텔이라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1만 5000명을 줄이고 100억달러를 절감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팻 겔싱어의 기준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진단하면 어떨까.

삼성전자 전세계 반도체 종업원수는 2020년 7만 4415명에서 2023년 9만 3639명으로 25.8% 늘었다. 반면 매출은 2020년 72조 8600억원에서 2023년 66조 5900억원으로 8.6% 줄었다. 매출 감소세는 인텔보다는 다소 양호해 보이지만 영업이익을 보면 소폭 흑자였던 인텔보다 더 나쁘다. 2020년에 18조 8100억원 흑자에서 2023년엔 14조 8700억원 적자다. 인텔 겔싱어 CEO의 시선으로 보면 대규모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양사의 눈에 띄는 차이점은 시장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세울 수 있느냐다. 이는 노동의 유연성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텔의 매출과 영업이익 추이와 인텔의 직원수 그래프를 보면 동조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면서 직원수도 늘어나다가 매출과 이익이 줄면 직원수도 줄어드는데 이는 미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매출이나 이익의 등락과 상관없이 일부 사업부 분사 시기를 제외하면 직원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인텔의 잣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는 우리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기업이 어렵더라도 감원 등 인력 구조조정은 최후의 수단으로도 쉽지 않은 영향 때문이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 속에서 초과이익분배금(OPI)이 나오지 않자 3만명 이상의 반도체 부문 근로자들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파입에 돌입하는 상황과 인텔의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크게 비교된다. 지난해 삼성 반도체의 실적은 인텔의 잣대로 보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전삼노는 임금인상과 성과급 기준변경, 휴가 확대 등을 내걸었다.

인텔의 창업자인 앤디 그로브(1호 사원, 3대 CEO, 사진 왼쪽부터), 밥 노이스(1대 CEO), 고든 무어(2대 CEO)의 생전의 모습. 밥 노이스는 세계 최초의 IC를 개발했고, 고든 무어는 반도체의 성장 이론인 '무어의 법칙'을 만들었다./사진제공=인텔
지난 1일 (미국 시간) 팻 겔싱어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에 앞서 같은 날 국내에서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이 반도체 신조직문화(C.O.R.E WORK)를 주제로 한 경영메시지에서 "2분기 매출과 이익의 개선은 대외적인 시황이 좋아진 것이 그 영향"이라고 하자 전삼노는 직원들의 헌신과 노력을 무시했다며 규탄 메시지를 내고 갈등의 불씨를 계속 이어나갔다.

인텔의 창업동지이자 1호 사원으로 11년간 이 회사를 이끌었던 앤디 그로브는 "성공은 만족을 낳고, 만족은 실패를 낳는다. 과거와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 미래의 생존 근거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의 삼성전자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이었던 인텔도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비용절감과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사사건건 노사가 갈등하며 파업에 나서 반도체 라인을 멈추겠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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