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티메프' 막을 수 있을까…이커머스 정산기한 대폭 줄인다

머니투데이 세종=박광범 기자 | 2024.08.08 05:20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살펴보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사진=김명원
정부가 이커머스 업체와 PG(결제대행업)사에 대해 법령상 정산기한을 도입한다. 이미 정산기한 법규정을 적용받는 대규모유통업자보다 더 짧은 정산기한을 설정할 방침이다. 또 판매대금의 일정 비율을 은행 예치나 신탁 등으로 별도관리 하도록 의무화한다. '티몬·위메프 사태'(이하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로 이커머스가 판매사 정산대금을 쌈짓돈으로 굴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만 일각에선 '머지포인트 사태'를 겪은 정부가 또다시 '티메프 사태'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 뒤에야 '뒷북 처방'을 내놓았단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티메프 사태 추가 대응방안 및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이커머스·PG사 정한기한 도입…판매대금 별도관리 의무화


먼저 이커머스 업체와 PG사에 대해 법령상 정산기한을 도입하고 제3의 기관 및 계좌 등에 판매대금을 별도관리하도록 의무화한다.

현재 이커머스와 PG사는 법령상 규정 없이 각 사의 약관 및 계약 등에 따라 정산기한을 설정하고 자율적으로 판매대금을 관리하고 있다. 현행 대규모유통법이 40~60일 이내의 정산기한을 두고 있지만 매출 1000억원 이상 또는 매장면적 3000㎡ 이상 업체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티메프와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일부 이커머스가 마케팅 등 목적으로 법령상 의무가 없음에도 자체적으로 정산기한을 짧게 하거나 판매대금을 별도 계좌에 예치하고 있을 뿐이다.

티메프의 모기업인 큐텐(qoo10)은 이를 악용해 입점 판매자들에 가야할 판매대금을 사업 확장 등에 썼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에 정부는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이커머스 업체에 정산기한을 도입하고 위반시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구체적 정산기한은 업계 및 전문가 의견 등을 반영해 이달 안으로 최종 결정한다. 다만 현재 대규모유통업자보다 짧은 수준의 정산기한을 적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강기룡 기재부 정책조정국장은 "당정협의에서 당이 정산기한을 타이트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단 요청을 했고 최 부총리도 동의했다"며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40~60일로 돼있는데 그보다 짧은 수준으로 하겠단 방향에 대해 당정간 합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적용 유예기간을 둬 기업이 적응할 시간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커머스를 겸영하지 않는 PG사의 경우에는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정산기한 내 대금지급을 의무화하고 미지급시 제재 요건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이커머스 업체와 PG사가 판매대금의 일정비율을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등으로 별도 관리하도록 법을 개정한다.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비율 등은 업계 및 전문가 간담회 등을 거쳐 이달 중 결정한다.

티메프 사태로 드러난 상품권 시장의 잠재적 위험 관리는 일단 개정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시행을 지켜본 뒤 추가 규율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달 15일 시행 예정인 개정 전금법은 발행잔액 30억원 및 연간 총발행액 500억원 미만으로 선불업 등록면제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대다수 모바일 상품권이 규율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 선불업자에는 선불충전금 100%를 예치, 신탁해야 하는 의무도 부여된다.

PG사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한다. 현재 159개 PG사가 등록돼 있는데 PG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고 감독 수단도 미비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PG업 거래 규모에 비례해 인적·물적 등록 요건을 강화할 예정이다.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시정 조치 요구, 업무 정지, 등록 취소 등 제재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외국환업무를 함께 취급하는 PG사에 대해서는 한층 강화된 자본금·외화유동성 규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강 국장은 "이커머스 부실이 판매자나 소비자에게 전이되는 부작용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커머스 행위 규제에 대해 담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직접적 규제는 다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유동성지원프로그램 + 지자체 지원 약 1.2조원 금융지원


티몬·위메프(티메프) 피해자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여행상품 환불 지원방안을 촉구하는 릴레이 우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티메프 사태 피해 판매자들을 위한 금융지원 규모는 약 1조2000억원까지 확대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9일 티메프 판매대금 미정산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소상공인에 56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 추가로 13개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재원을 활용한 자체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서울 700억원 △부산 200억원 △대구 100억원 △인천 325억원 △광주 100억원 △세종 1000억원 △경기 1000억원 △충북 340억원 △충남 975억원 △전북 800억원 △전남 114억원 △경북 400억원 △경남 300억원 등 약 6000억원 규모다.


예컨대 경기도의 경우 미정산 피해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의 'e커머스 피해지원 특별경영자금'을 운영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에 200억원, 소상공인에 8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인데 업체당 대출한도는 중소기업 5억원, 소상공인 1억원이다. 추가로 중소기업은 2%, 소상공인은 2.5%의 이자차액을 경기도가 보전해줄 예정이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된 약 1조2000억원 규모 금융지원으로 피해 판매자들의 유동성 위기에 급한 불을 끈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티메프 판매대금 미정산 규모는 지난 1일 기준 2783억원으로 집계됐지만 정산 기일이 다가오는 6~7월 거래분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1조원 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정부가 앞서 발표한 5600억원 이상 규모의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은 9일부터 본격 가동된다.

먼저 2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긴급경영안정자금은 이달 9일부터 접수를 받을 계획이다. 소진공이 1700억원, 중진공이 300억원의 저리 대출을 공급할 예정이다. 업체당 소진공 대출은 1억5000만원(금리 3.51%), 중진공 대출은 10억원(금리 3.4%)까지 받을 수 있다.

특히 정부는 피해 소상공인에 빠르게 자금이 융통될 수 있도록 소진공 자금 공급방식을 대리대출에서 직접대출 방식으로 변경했다. 기존엔 소진공으로부터 대출 대상으로 판단받은 뒤 금융기관을 찾아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이번엔 소진공이 대상 판단부터 대출심사, 대출 실행까지 한번에 진행한다.

정부는 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진공 자금의 경우 소진상황에 따라 필요시 추가 증액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3000억원 규모의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금융 지원 프로그램도 같은 날부터 신보를 통해 신청자를 모집한다. 기업당 최대 30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금리는 3.9~4.5% 수준이다. 정부는 업체당 3억원까지는 보증심사를 간소화하고 필요할 경우 지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정부는 재정 투입을 통한 직접적인 손실보전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세웠다. 강기룡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현물보상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은 허물지 않되 판매자들의 어려움은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며 "티메프와 (모회사인) 큐텐의 상황을 볼때 손실의 상당부분이 판매자에 귀착될 것으로 보이지만 사적 자치 영역이고 '비즈니스 리스크'라는 점을 고려해 코로나19(COVID-19) 때처럼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은 원칙에 안 맞는다는 것이 당정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소비자 피해 지원책도 추가했다. 일반상품에 대해선 이번주 안으로 환불이 완료될 수 있도록 신용카드사 및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와 협업할 계획이다. 상품권과 여행상품은 환불 지원과 소비자원 분쟁조정을 병행할 계획이다.

특히 여행·숙박·항공권과 관련해선 오는 9일 집단분쟁조정 신청 접수를 마감하고 다음주부터 조정 절차를 시작한다. 기타 분야(일반상품 등) 및 통신판매업자에 대해서도 조정요건(동일상품 50명 이상 신청) 해당 시 집단분쟁조정을 실시할 방침이다.



"담을수 있는것 다담았다"지만 '뒷북처방' 지적도


일각에선 이번 정부 대책이 '뒷북'이란 지적도 나온다. '혁신'을 명분으로 관리감독 사각지대에서 영업을 펼쳐온 이커머스 업체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21년 8월 발생한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에도 이커머스가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돼왔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실제 '티몬 캐시'와 같은 선불충전금 환불 논란은 머지포인트 사태와 유사하다.

앞서 머지포인트 운영사인 머지플러스는 편의점, 대형마트, 외식 체인점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머지머니'를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사용처가 축소되면서 문제가 드러났다. 환불 대란이 빚어지면서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정부는 티몬 캐시 문제를 다음달 15일부터 개정 시행되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으로 막겠다는 방침인데 이는 결론적으로 머지포인트 사태 대책이다.

개정 전금법은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체(선불업자)로 하여금 선불충전금 100%를 별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발행 잔액 30억원 및 연간 총발행액 500억원 이상 기업만 규제 대상이어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상품권 발행 주체와 발행한도에 대한 제한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상품권 발행업자는 금융위원회에 신고하고 연간 발행 한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 관계자는 "상품권에 대한 근본적 제도개선 방안은 하반기 중 시간을 가지면서 공정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서 논의할 예정"이라며 "새로운 지급결제 업체들이 늘어나고 스타트업이 늘면서 금융리스크가 커지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혁신을 촉진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그 두 부분을 어떻게 균형되게 봐야 할지(가 과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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