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발생한 인천 청라 아파트 화재 사고와 판박이 사례다. 광양에서는 내연기관 차량이, 인천에서는 전기차가 발화 포인트 였다는 것이 차이난다. 다른 점은 또 있다. 사고 이후 전기차는 마치 시한폭탄 같은 취급을 받고 있지만, 내연기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 금지 등이 거론되는 것을 두고 과잉대응이라는 말이 적잖게 나오는 이유다.
사실 전기차의 화재 확률은 내연기관보다 떨어진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만대당 내연기관 화재는 1.9건, 전기차 화재는 1.3건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합선 등에 따른 '열폭주'의 위험성을 우려하지만, 광양의 사례에서 보듯 내연기관 역시 주차된 상태에서 발화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지난 2일만 해도 대구 중구의 한 주상복합건물 지하 1층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내연기관 승용차에서 불이 났다. 최근 1~2달 간 비슷한 내연기관 화재는 서울 양천, 인천 송도, 경기 남양주, 대전 중구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800도가 넘는 고온의 불이 나는 경우가 많고, 단단한 밀폐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화재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화재에 유의해야 하는 건 내연기관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불로 번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내연기관이 오히려 3분 정도 더 빠르다. 내연기관에는 휘발유나 경유를 비롯해 엔진구동에 사용되는 각종 유류들도 들어있어서 화재 성장 속도가 더 빠른 측면도 있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지난해 '전기차 실화재 진압 시연회'를 통해 "전기차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더 어려운 것은 특별히 아니다"며 "막연하게 '전기차는 불이 안 꺼진다'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전기차와 배터리를 '폭탄' 취급하는 과도한 우려는 글로벌 트렌드에도 맞지 않다. 미국은 2030년 전기차 판매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고, 유럽은 2035년 내연기관 퇴출을 목표로 잡았다. 전기차는 최소 연 20%대 성장을 보장하는 미래 먹거리 시장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기차·배터리를 죄악시하는 풍조가 확산된다면, 국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만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배터리 산업만 봐도 연산 20GWh(기가와트시)당 4000명 수준의 고용이 가능하다. 장비·소재 등을 납품하는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면 그 경제효과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정교한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배터리 전주기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리스크 분석에 기반한 탄력적 규제를 적용하는 시스템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며 "사고 예방, 예측 차원의 사전진단 기술개발에 집중하면서 R&D(연구개발) 지원 등 제도적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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