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진료 버리고 진로 찾는 전공의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4.08.08 05:28
'미래의 전문의'가 사라졌다. 전국 전공의의 90%(1만여 명)가 병원을 떠난 건데, 세계적 의료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년이면 의대 정원이 기존(3058명)보다 1509명 더 늘지만, 의사 국시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의사면허를 따는 '신규 의사' 수는 많아야 364명(의사 국시 응시인원 100% 합격 시)으로 예고된다. 예년(3000여 명)의 12% 수준이다.

의정 갈등이 벌써 반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개선은 커녕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정부는 '증원은 유지하되 조건 없는 대화'를, 의사들은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서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피해는 환자와 병원이 떠안았다. 지난달 18일 교통사고로 발목이 잘린 70대 남성은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응급실을 돌고 돌다 끝내 사망했다.

전공의가 빠진 국립대병원도 자금난에 휘청거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국립대병원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0개 국립대병원의 5월 말 현금 보유액은 1420억7000만원으로, 병원들이 설정한 적정 보유액(3999억원)의 35.5%에 불과하다. 적정 보유액은 각 병원이 설정한 것으로, 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금 규모다. 잔고가 바닥나기 직전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이런 문제가 개원가도 아닌, 중증·응급·희귀난치성 질환의 최종 치료를 책임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줄줄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둥'(전문의)을 떠받친 '주춧돌'(전공의)이 빠져나가면서 '집'(병원)은 언제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됐다. 정부가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갖가지 '당근'을 주며 전공의의 복귀를 꾀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전국의 각 수련병원이 공고한 채용 인원 7645명 중 104명(1.36%)만 지원한 데 그쳐서다.

하지만 사직 전공의가 상급종합병원으로 돌아올 길은 멀어 보인다. 이미 상당수는 개원가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선배 의사들이 그들의 진로 찾기를 돕기 위해 '근골격계 초음파 보는 법'을 알려주는 연수강좌엔 모집 2시간 만에 신청이 마감됐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근골격계 초음파 검사는 정형외과를 찾아온 환자의 통증 원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기초 지식으로, 정형외과 개원가에 취업하는 페이닥터에겐 필수다.


이 행사를 후원한 대한의사협회는 사직한 전공의의 구직 활동을 돕기 위해 지난달 31일 '전공의 진로 지원 TF(태스크포스)'까지 꾸렸다. 선배 의사들이 '전문의 되기'를 포기한 후배 의사들에게 상급종합병원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는 게 아닌, '일반의로서 성공하는 법'을 독려하기 위해 팔까지 걷어붙인 셈이다.

구멍 난 배에 물이 차고 있는데, 누가 구멍을 냈는가부터 추궁하는 건 사치다. 구멍을 메꿀 묘안을 내고 실행에 옮기기에도 부족하다. 대규모 의료 공백을 어떻게 메꿔 한국 의료의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을지 대안이 나와야 할 때다. 아니, 이미 나왔어야 한다. 연간 2만여 명의 폐암과 심장 수술을 담당하는 흉부외과엔 전공의가 이제 12명만 남았다.
정심교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의료헬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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