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는 줄곧 백인 노동 계층의 불만과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해 왔다. 듣는 이들이 가슴을 치고, 주먹을 쥐고, 눈물을 찍어내게 된다. 그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가 그랬고, 정치인 밴스의 연설이 그랬다. 뉴욕타임스(NYT)는 밴스가 독특한 화법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그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을 보면, 어렸을 때 살던 고향 켄터키주의 피폐해진 모습과 빈곤했던 가족, 그리고 비슷비슷하게 힘겨웠던 백인 이웃들을 언급했다. 자신이 부통령이 되어 되살리고 지키고 싶은 미국은 그 어떤 '아이디어'가 아니라 고향 그 자체다. 눈을 감으면 대대손손 묻혀있고 자신과 자녀들도 묻히기를 바라는 켄터키 동부의 산이 떠오르게 만든다. 미국은 하나의 땅덩어리이자 그 안에서 세대를 이어온 역사가 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밴스의 표현을 "혈육과 토양 민주주의로 암호화한 일종의 나치즘"이라고 맹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밴스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에 이민 온 사람, 뿌리가 깊지 않은 사람, 미국 국적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덜' 미국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낳을 수 있어서다. 비평가 애덤 서워는 "특정 역사와 고향을 공유하는 사람이 '진짜 미국인'이라면 우리 중 일부는 '덜 미국인' 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이 터졌을 땐 "솔직히 말해서, 저는 우크라이나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나의 고향인 미국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두 사람의 조합은 무서운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 영국 가디언은 "공화당의 그 누구든, 트럼프가 만드는 새로운 정의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그가 과거 대통령 재임시절 국제사회와 기구, 동맹국과의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군소리하는 역할이 주어진 게 부통령이었다면, 이번엔 다르다. 트럼프가 밴스를 선택한 건 이제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들을 의무가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국 대선을 지켜보는 '동맹국'의 마음은 타들어 갈 뿐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