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시간부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에서 사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동훈 대표가 사무총장을 통해 당직자 일괄 사퇴를 요구한 지 하루 만이자 이날 오후 한 대표가 "인선은 당대표의 권한이다. 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달라는 지난 전당대회의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사퇴를 압박한 직후다.
정 정책위의장은 이날 사의를 표하기 전까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침묵했다. 전날 나온 일괄사퇴 요구에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홍영림 여의도연구원장과 김종혁 조직부총장, 김수민 홍보본부장 등 대부분의 전임 당직자가 회의에 불참하며 사의를 수용한 것과 대비됐다. 그는 "그 당시(당대표 선거 직후)에는 누구도 사임하라는 요청이 없었다"며 "어제 오후 2시 한 대표가 '새 정책위의장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완곡한 말을 한 이후 고민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정책위의장은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사퇴를 결심했다면서도 당헌상 당대표에게 정책위의장 임면권이 없단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퇴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과의 소통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당초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대표와 가진 비공개 회동에서 당직 개편과 관련해 "당 대표가 알아서 하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힘을 실은 것으로, 인선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을 불식시키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정진석 비서실장이 한 대표에게 정 정책위의장 유임 설득에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은 정 정책위의장 유임이란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한 대표가 "우리 당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윤심을 거슬렀다. 당초 정책위의장 유임 여부를 둘러싼 갈등은 친한계와 친윤계 간 헤게모니 다툼으로 비춰졌는데,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이 만나면서 전선이 확대됐다. 대통령실이 당무에 개입한 것으로 비춰지게 되면서 정 정책위의장이 자진사퇴로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엔 정 정책위의장을 유임시켜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들라는 의중이 포함된 것"이라며 "정 비서실장을 통해 우회적으로 설득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 한 대표가 거부하면서 잠복돼 있던 윤한 갈등이 표면화됐다"고 평가했다.
정책위의장 인선을 놓고 윤한 갈등까지 부각한 것은 정책위의장 자리가 그만큼 한 대표와 윤 대통령 모두에게 포기하기 어려운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다. 한 대표로서는 지명직 최고위원뿐 아니라 정책위의장까지 자기 사람으로 앉혀야 총 9명의 지도부 중 5명의 과반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최고위원 한 명을 추가로 확보해 한 대표를 견제할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둘러싼 1차 윤한 갈등 이후 서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데다, 미래 권력인 한 대표로선 자신의 정치를 해나가기 위해 윤 대통령과 차별화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양측 간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내에선 새 지도부가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당정갈등이 비화된 데 대해 비판이 나온다. 전당대회에서 '63% 득표율'로 드러난 변화에 대한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새 인물이 당대표가 됐으면 잘 순항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민주당의 입법폭주와 싸워야 하는데 엉뚱한 데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이르면 2일 신임 정책위의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4선인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 수도권 3선인 김성원(경기 동두천·양주·연천), 송석준(경기 이천) 의원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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