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격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잠시, 원인은 미 육군 항공대 폭격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폭격기는 이 빌딩의 79층을 들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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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했던 공군 조종사, 방향 감각을 잃다━
조종사였던 27세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중령은 2차대전 전투비행 시간만 1000시간을 넘기며 공군 십자장 등 다수의 훈장을 탄 파일럿이었다. 1938년 7월에 사관학교에 입교한 그는 승진이 빠른 편이었고 그만큼 탁월한 조종사였다.
특히 사고 시점은 그가 활약했던 유럽 전쟁이 이미 끝났고, 태평양전쟁 역시 막바지로 치닫던 때였다. 포화 속을 누비던 그로선 뉴욕의 안개쯤은 우스웠을 것이란 추측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었고, 또 다른 마천루인 크라이슬러 빌딩(88층)을 지난 후 왼쪽으로 돌려야 할 기수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9시 40분 비행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북면의 78층과 80층 사이에 충돌했다. 실제 웨스트포인트 졸업생 매거진에 실린 그의 부고에는 "그는 군인 정신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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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초고층 빌딩…입주사 직원들 날벼락━
화재는 40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 사고로 14명이 숨졌다. 비행기는 충돌 후 화재로 전소됐고 타고 있던 승무원 3명도 전원 사망했다. 폭격기 조종사 2명과 탑승 병사 1명,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79층과 80층에 입주한 미국 가톨릭 복지협회 직원 11명 등이 죽었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30여명을 제외하면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었다. 빌딩 안에 있던 1540명은 무사했다. 엘리베이터 조작원 베티 루 올리버가 엘리베이터에 탄 채 75층 높이에서 떨어졌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일은 최장 거리를 추락한 엘리베이터 사고에서 생존한 기록으로 기네스에도 등재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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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인데다 건물 안 무너져 피해 적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전통적인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여서 이 같은 충돌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 역시 다행이었다.
당시 빌딩에는 전망대 관광객 40여명을 포함, 약 150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액은 당시 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큰 파손과 희생자에도 불구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사고 불과 이틀 만인 다음 월요일, 사무를 위해 문을 열었다.
이 사고는 당시 초고층에서 발생한 최초의 화재이자, 비행기가 초고층 건물에 충돌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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