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 조용필이 김민기를 "존경한다"고 말한 까닭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 2024.07.26 05:56

[김고금평의 열화일기] 강헌 평론가가 이어준 두 거장의 만남…조용필, 김민기의 '작가주의'와 '한길 인생'에 반해

'가왕' 조용필(왼쪽)과 극단 '학전' 대표 김민기.

대한민국 최고 인기 대중가수 조용필(50년생)과 언더그라운드의 숨은 고수 고 김민기(51년생)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다른 스타일로 평가받았다. 주류와 비주류, 히트곡과 아름다운 곡, 양지와 음지, 보수와 진보 같은 확실하지만 (때론) 미세한 차이에서 오는 구분은 두 사람의 의중과 관계없이 섞일 수 없는 존재처럼 정의되는 게 현실이었다.

이 현실의 벽을 깨뜨린 매개자가 강헌 평론가다. 그는 1997년 겨울 어느 날, 조용필과 술을 마시다가 느닷없이 김민기 얘기를 꺼냈다. 당연히 자신과 다른 장르의 뮤지션이어서 대충 넘어갈 줄 알았던 조용필의 답변은 의외로 "존경한다"였다. 순간, 머리 한 대 맞은 듯 의아했지만 강 평론가는 내친김에 김민기를 방배동 술자리에서 만나 "조용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민기는 "실은 나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됐다. 강 평론가의 연결로 성사된 두 거장의 만남 스토리는 이미 유명하지만, 이 자리에 직접 참여해 느낀 그날의 생생한 감정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 강 평론가를 25일 전화로 만났다.

유명한 일화를 다시 꺼내자면, 조용필·김민기·강헌 세 사람이 조용필의 단골 일식집에서 밤 10시까지 소주 20병을 비우고 카페로 몰려가 조용필이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불러 그를 예우하고 존경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강헌은 그때 받은 느낌을 "세상에 이런 감동이 어디 있느냐"며 "소주 20병을 비울 때까지 말 한마디 제대로 교환하지 못하던 거장들이 노래 한 곡으로 서로 교감하고 공감하고 인정했다"고 표현했다.

지난 21일 위암 투병 끝에 별세한 '포크 대부' 김민기(73) 전 학전 대표의 영정사진이 22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놓여 있다. /사진제공=학전

의문이 들었다. 평소 조용필을 곁에서 오래 지켜본 기자의 눈에 조용필은 자신보다 앞서가는 음악에 귀 기울이고 가창이나 연주 같은 음악의 총체적인 합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뮤지션인데, 왜 조용히, 때로는 고독하게 읊조리는 김민기와 그의 음악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강헌은 "결국 철학적인 문제"라고 요약했다. "조용필은 그것이 어떤 길이든 한길을 걷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어요. 게다가 김민기가 하는 음악은 조용필이 하지 않는 유일한 장르(포크)이기도 하고요. 딱 한 가지 없는 걸 김민기가 채우지 않았을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듯해요."

김민기의 낮은 저음으로 구성된 가창력이나 음악적 테크닉은 그저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는 얘기로 읽혔다. 김민기는 스스로 자신의 음악이 내세울 것 없는 것이라며 애써 낮추고 '뒷것'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가리는 데 집중했지만, 조용필은 그렇게 보지 않은 셈이다. 한길만 걸으며 세운 자신만의 음표와 메시지가 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중의 저 오랜 역사와 함께 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는 점에서 (음악적) 도구를 넘어 각인된 의식의 메아리와 철학에 존경심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강헌은 두 사람은 이후 한 번 더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강헌의 제안으로 성사된 조용필의 소극장 공연이 대학로에서 열렸는데, 그때 극단 '학전'을 운영하던 김민기가 꽃을 사 들고 조용필 분장실에 찾아간 게 그가 본 두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포크 대부' 김민기. /사진=학전

강 평론가의 눈에 비친 두 거장은 이렇게 묘사됐다. 조용필은 노래, 연주, 편곡, 가창 등 음악 전반에 걸쳐 글자 그대로 한국적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종합한 뮤지션이고, 김민기는 아름다운 우리 말의 울림 속에서 대중음악의 언어를 찾아낸 위대한 작가다.

"김민기의 또 다른 위대한 공헌이라면 짧은 노래 안에 서사를 빼놓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작은 연못' 이런 노래 들을 때 (장조에서 단조로 넘어가는 후렴구에) 짧지만 강렬한 서사를 구사하는 것만 봐도 그 위대함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김민기도 스스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어요. '내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느냐'고. 그런 점들이 작가의 위대함이 아닐까요."

베스트 클릭

  1. 1 "박지윤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최동석 막말 심해"…누리꾼 반응 보니
  2. 2 [단독]"막걸리 청년이 죽었다"…숨진지 2주 만에 발견된 30대
  3. 3 "제시 일행 갱단 같다" 폭행 피해자 주장에…재조명된 박재범 발언
  4. 4 최동석 "남사친 집에서 야한 영화 봐"…박지윤 "성 정체성 다른 친구"
  5. 5 "어머니 아프다" 돈 빌려 도박한 이진호…실제 모친은 '암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