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숨은 권력' 마취과…고질적 인력난에 외국 의사 수입 제안도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 2024.07.25 15:59

마취통증의학과는 병원에 '숨은 권력'이다. 사전에 마취과의 동의가 없다면 수술방을 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근 전공의 이탈로 병원의 수술·입원이 급감한 것도 마취과 인력이 급감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지역 한 상급종합병원 외과 교수는 "마취과가 없으면 암, 외상, 심장, 뇌 등 전신마취가 필요한 중증 질환 수술을 못 한다"며 "전공의가 떠나면서 교수만으로 전체 수술을 감당할 수 없어 일정이 밀리고, 수술 전후 입원 환자가 감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보건복지부 전문과목별 전문의 현황에 따르면 국내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마취과 전문의는 올해 1분기 기준 5300명이다. 전체 활동 의사의 5.5%가량이다. 마취통증의학과는 매년 200여명의 전공의를 모집하는데 매년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100%를 웃돈다.

하지만, '인기과'인 마취통증의학과도 전체 수술을 책임지기엔 한참 모자라다.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수술실 수(병실 수 기준)는 8809개로 마취과 전문의가 훨씬 부족하다. 단순히 1대 1 매칭하면 하루 3500개 수술실이 '가동 불능'인 셈이다.

중증·응급 질환을 책임지는 상급종합병원도 마취과 전문의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다. 지난 1분기 기준 상급종합병원의 수술실은 총 1120개지만 마취과 전문의는 775명으로 훨씬 적었다. 병원(수술실 2605개, 전문의 799명), 종합병원(수술실 1817개, 전문의 1031명), 의원(수술실 3119개, 전문의 2503명) 모두 마찬가지다. 마취가 아닌 통증만 보는 전문의도 통계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수술실 마취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의료기관별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현황/그래픽=이지혜

사실 전공의 이탈 이전부터 전문의가 없어 대학병원조차 수술실을 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마취과 전문의가 수술실을 떠나 통증 클리닉을 개원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고강도 업무, 낮은 보상, 사법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마취과는 수술 중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을 포함해 수술 종류에 따라 뇌 활동 수준, 폐동맥 혈압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환자 생명을 책임진다. 중증 환자일수록 위험도가 높아 의료 소송에 휩쓸릴 위험이 큰데 상대적으로 수가는 낮아 임금 등 처우가 그다지 좋지 않다.


개원가에서 일하는 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는 "마취를 전담하는 경우 대학병원 교수보다도 개원가로 막 나온 전문의 월급이 200만~300만원 정도 많다"며 "주 4일 근무나 휴가 보장 등은 장점이지만 최근 대학병원을 떠나는 의사가 늘면서 업무량이 많아져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회는 이대로라면 '수술 마비' 사태가 도래할 수 있다며 중증 질환에 대한 마취 수가를 높이는 등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약물 투여에 대한 보상, 수술 전 환자 평가에 대한 수가 신설 등도 제안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당장 급한 암, 뇌 등 중증 질환의 원활한 처치를 위해 외국 마취과 의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한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대학병원의 가장 시급한 곳은 수술실의 마취과"라며 "환자와 직접 대면 진료를 하지 않아도 가능한 분야이므로 외국 의사면허를 가진 이들에게 의료 심각 단계인 지금, 가장 시급한 수술실 마취과 분야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전증을 진료하는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장(신경과 전문의)도 앞서 "외국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를 지원받아 시급한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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