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갇혔는데 3분만에 '도살'…사육곰 100마리 어쩌나[체헐리즘 뒷이야기]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4.07.26 07:30

1년 5개월 남은 '사육곰 산업 종식'…환경부, 남겨질 곰 100여 마리는 無대책
280마리 중 120~130마리만 사육곰 보호시설 두 곳으로, 나머지는 '교수형' 등 도살 위기
10년 넘게 갇혀 살다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니…시민 77% "보호시설 더 만들어 수용해야"

편집자주 |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쓰고 있습니다. 해봐야 깊이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지요. 격주 토요일 아침이면 오래 품은 기사들이 나갑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행복합니다. 여전한 숙제가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를 가끔씩 풀려 합니다.

강원도 화천 한 사육곰 농장의 마지막 곰이었던 '주영이'. 사육곰이라 불리지만 멸종 위기인 '반달가슴곰'. 몸보신을 위해 길러지고, 10살이 되면 도살돼 웅담이 빼내어질 운명을 가지고 살았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구조해 생이 다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게 됐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주영이'는 강원도 화천 농장에서 살던 곰이었다. 열 살이 되면 합법적으로 죽이고, 몸보신용으로 웅담(곰의 쓸개)을 꺼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키우던 곰, 그게 사육곰이었으므로.

어미도 친구들도 그리 다 죽었다. 주영이 홀로 남았다. 주영이가 열 살이 되던 해, 웅담을 사고 싶단 이가 나타났다. 농장 주인은 팔지 않았다. 마지막 곰만큼은 살리고 싶었단다.

같은 강원도 화천에서 사육곰 13마리를 임시 보호시설에서 돌보는 단체가 있었다. 사육곰들을 위한 목소릴 진심으로 내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주영이를 살리기로 했다. 그게 지난해 10월이었다.
활동가들이 다가가자 주영이는 철창을 거칠게 쾅쾅 쳤다. 콧김을 내뿜기도 했다. 10년 만에 비좁은 철창에서 꺼내던 날, 주영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탈출하지 않으면 죽는단 생각과 그게 불가능하단 절망 사이에서의 몸부림. 이마에 상처가 날 정도였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은 알았다. 주영이의 위협이 실은 '두려움'이란 걸. 세상엔 위험하지 않은 인간도 있다고.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알려주었다.
데려온 지 한 달 만에 주영이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손으로 먹이를 줘도 받아먹을 만큼 안심했다. 새로운 환경도 좋아했다. 잔뜩 깔린 짚의 감촉이 그리웠다는 듯 어루만지고, 소방호스 장난감에 꽂힌 호박을 빼먹으며 즐거워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임시 보호시설엔 '곰숲'이 있다. 비좁은 철창을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사장. 여기엔 자연스러운 흙바닥도 있고, 오르길 좋아하는 곰의 습성을 반영한 구조물도 있다. 10~25년 갇혀 살던 사육곰들을 위해 활동가들이 만든 거였다.
올 봄, 5월 어느 날. 겨울잠에서 깬 주영이가 태어나 처음 땅을 밟으러 나왔다. 10년 넘게 콘크리트 바닥과 철창에서만 살았기에 나가길 주저했다. 의젓한 친구 우투리가 도와주었다. 여기로 나와도 괜찮다고, 그게 실은 곰다운 거라고.

주영이도 용기를 내었다. 흙의 촉감을 처음 느끼고 싱그런 풀 내음을 맡으며 숨겨둔 먹이를 냠냠 먹었다. 그리 한참 동안 곰숲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곰인 주영이가, 본래 모습대로 존중받은 건 살면서 아주 처음이었다. 인간과의 '관계'가 새로이 맺어지고 있었다.



비좁은 뜬장서 갇혀 살다…10살부터 웅담 채취


뜬장에 갇혀 사는 한 사육곰 농장의 곰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주영이 이야길 먼저 꺼낸 건, 사육곰도 여느 곰들과 다르지 않단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흙과 나무에 코를 박고 먹을거리를 찾는 걸, 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뜯고 씹는 걸, 물에 몸을 담그며 휴식을 취하는 걸 좋아한다고.

그런 존재를, 좁게는 1평 남짓한 철창에 가둬왔다. 본능에 따를 기회를 철저히 뺏었다. 1981년부터 웅담이 '값비싼 약재'라며 사육된 게 시작이었다. 당시 웅담 가격이 2000~3000만원씩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호스를 꽂아, 즙을 빼 먹는 잔혹한 기술까지 나왔다.
바깥에 단 한 번 나가본 적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본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2005년에는 정부가 관리 지침을 바꿔, 합법적으로 도살할 수 있는 사육곰 나이를 24년에서 10년으로 낮췄다. 10살이 되면 죽여서 웅담을 채취할 수 있게 된 거였다. 곰 사육시설의 지침은 '4제곱미터 이상'으로 정했다. 그게 외려 사육곰에겐 악재였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에서 "국가가 동물 학대 방법을 안내한 게 아닌가. 이보다 넓은 면적에서 기르던 사람들에게 '우리를 더 좁게 만들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 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수년간 전국 사육곰 농장을 조사했다. 농장 대다수는 사육곰을 '뜬장(바닥에서 떠 있는 철창)'에 넣어뒀다. 면적이 좁고, 바닥이 불안정해 정상적으로 걸을 기회가 적다. 나이 든 사육곰 대다수가 '척추증'으로 고통받는 걸 감안할 때, 사육장 형태가 수명에도 영향을 주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앞다리 둘, 뒷다리 하나가 잘려나가 뒷다리 하나만 남은 사육곰. 주로 옆 칸의 곰이 물어 뜯어 생기는 경우였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또 곰은 지면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쉬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농장이 16개 중 6개(37.5%)에 불과했다. 신선한 물을 마시는 것도 동물 복지의 기본인데, 농장 절반은 물그릇마저 비어 있었다. 심지어 한 곳은 물이 더럽기도 했다. 이 농장 사육곰에게선 만성 탈수가 원인일 수 있는 피부병이 발견됐다.
척추증으로 인해 뒷발을 끌고 다니는 농장의 사육곰. 발가락 패드가 다 쓸려 나갔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이런 좁고 단조로운 곳에서 30년 평생을 고통스럽게 산다. 개사료나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내내 지루함에 시달린다.
지루함, 좌절, 무기력함, 짜증, 긴장. 그런 '정신적 고통'은 사육곰의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사육곰들은 비정상적으로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농장에선 정형행동의 빈도와 강도가 확연히 높았다. 그러나 농장주들은 이런 정신적 고통에 대해 대체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2026년부터 사육곰 산업 '불법'…남겨진 곰 100마리 '무대책'


이후 시민단체들이 연대했다. 정부를 압박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22년 사육곰 산업을 종식키로 합의했다. 이에 2026년 1월 1일부터는 곰 사육도, 웅담 거래도 모두 불법이 된다.

그럼 어렵게 살아남은 사육곰들은 어쩌나. 올해 3월 기준, 전국 18개 농장에 280마리가 남아 있다. 남은 곰 중 267마리는 2010년 이전에 태어났다. 가장 어린 곰도 2015년생이다. 최소 10년 넘게 갇혀 있게 되는 셈이다.


사육곰 280마리 중 120~130마리는 정부가 짓고 있는 보호시설(생츄어리 :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로 간다. 내년 완공 예정이다. 약 50마리 정도가 2026년까지 자연사 또는 도살 된다고 가정하면, 약 100 마리가 남는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정부 보호시설로도 못 가는 100여 마리 사육곰에 대한 대책이 없단 거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이 곰들에 대한 환경부의 기조는 농가에서 알아서 (조금 서둘러) 도살하도록 유도한단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한 환경부의 명확한 대책이 뭔지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자유연대가 조사하다 발견한 사육곰 농장의 모습. 위생 상태가 열악했다./사진=동물자유연대
그럼 주로 어떻게 도살되는가. 대부분 근육이완제를 맞고 도살됐다. 이를 곰에게 주사하면, 곰은 의식이 있는 상태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호흡근을 이완시켜 질식시키거나, 그 전에 경동맥 등에 상처를 내어 과다 출혈로 죽이는 방식이다. 일부 농가에선 '교수형'으로 도살하기도 한단다. 농장주들 말이 이랬다.

"요즘엔 목매달아요. 그게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는 방법이에요."(농장주 A)

"교수형. 3분, 5분이면 죽어."(농장주 B)
2021년 6월, 사육곰을 잔인하게 도살하고 불법 취식한 농장을 적발한 모습./사진=동물자유연대
이와 관련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정부가 (보호시설에 못 가는) 100여 마리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는 건, 곰이 근육이완제를 맞고 교수형으로 죽도록 방치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시민 77.4% "남은 사육곰, 보호시설 만들어 수용해야"


베트남에 있는 곰 생츄어리의 전경. 생츄어리는 더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공간이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책 없이 2026년이면 도살 위기에 놓일 100여 마리의 사육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지난달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77.4%는 "보호시설을 마련해 수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추가 시설을 더 짓거나, 동물 복지 단체가 민간 보호시설을 만들어야 한단 거였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환경부에 제시한 해결책은 이랬다.
2022년 사육곰들을 위한 방사장 '곰숲'을 만드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우선 정부가 남은 사육곰을 모두 사들이는 것. 한 마리당 2000만원에 매입한다고 했을 때, 약 56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1980년대 정부가 사육곰 산업을 부추겨 폭발적으로 늘게한 것에 대한 마땅한 책임이라 했다.

보호시설에 가지 못하는 사육곰은, 고통과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락사'라도 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수의사와 수의학적 기술을 동원해 '편안히 죽을 기회'를 갖게 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난에 대해선 사과해야 한다고.
남은 사육곰을 위해 '보호시설'을 정부든 민간이든 지어야한다는 응답이 77%로 가장 많았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또 사육곰 120~130마리를 수용할 정부 보호시설 두 곳(전남 구례, 충남 서천) 중 구례 보호시설을 국립공원공단이 맡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국립공원공단이 곰을 야생에 도입하는 전문가 집단이지만, 시설에서 잘 기르는 건 별개 문제"라며 "이대로 가면 애초 취지와 달리 동물원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전시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정말 바라는 건 이런 거라고. 보고서 끝에 강조한 말이 이랬다.

"사육곰을 농장에서 꺼내어 생츄어리(보호시설)에서 살게 하는 건, 완전한 생활 환경이나 삶을 제공해주는 게 아닙니다. 생태계로 복귀시키는 일은 더더욱 아니죠. 여전히 제한된 공간에서 감금된 곰을 돌보는 일입니다. 앞으로 생길 곰 생츄어리는, 사육곰 산업이란 괴물을 길러냈던 과거를 반성하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이런 폭력이 인간-동물 관계에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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