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소리 후 옹벽 와르르, 가스 덮인 골목…물폭탄에 떠는 주민들[르포]

머니투데이 최지은 기자 | 2024.07.25 06:00

붕괴 사고·토사 유출…주민들 "또 사고 날까 불안" 발 동동

지난 22일 오전 11시7분쯤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주택 옹벽이 무너져내렸다. 사고 이후 안전 펜스가 설치됐고 무너진 옹벽 위로 방수포가 덮혀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추가로 무너지지 않으면 다행인데…폭우가 또 내리면 토사까지 흘러내릴까 걱정이네요."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방모씨(63)는 방수포로 덮인 옹벽 잔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오전 11시7분쯤 방씨 집 바로 옆에 있던 옹벽이 무너져내렸다.

2주 넘게 호우가 이어지며 곳곳에서 노후 건축물의 옹벽이나 석축이 무너지는 사고가 잇따른다. 옹벽과 석축은 토사가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배수 시설이 없으면 붕괴 위험이 크다. 빗물이 돌 사이로 스며들어 내부가 팽창하면서 이를 버티지 못한 벽이 무너져 내린다.

사고 이후 소방 당국과 경찰, 구청 관계자들이 현장에 나와 잔해를 수습했다.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통행로를 확보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2차 붕괴가 시작됐다. 옹벽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잔해는 방씨네 집 1층 대문 앞과 골목까지 뒤엎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무너진 돌에 사람이 깔려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7분쯤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주택 옹벽이 무너져내렸다. 같은 날 오후 4시쯤 2차 붕괴가 시작됐다. 옹벽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잔해는 방씨네 집 1층 대문 앞과 골목까지 뒤엎었다./사진=최지은 기자
인근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옹벽이 무너질 당시 소리를 들었다는 50대 유모씨는 "22일 새벽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불안했는데 폭탄이 터지듯이 '펑'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벽이 주저앉았다"며 "옹벽을 따라 가스관이 있었는데 가스관까지 터져 일대에 가스 냄새가 가득했다. 만약 누가 담뱃불이라도 피웠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밝혔다.

성북구 정릉동 일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지난해 이맘때 비가 많이 와서 이웃집 축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며 "당시 거주자들이 다 대피하고 조치했는데도 인근 건물 앞까지 잔해가 뒤덮어 해당 건물 사람들도 며칠 피신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노후 건축물이 몰린 동네 특성상 매년 크고 작은 붕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서울 종로구 야산에서 유출된 토사가 한 사찰로 흘러내리면서 두꺼운 철문이 부서졌다. 토사는 빠른 속도로 내려와 그대로 철문을 밀고 내려갔다. 같은날 종로구 창의문에서 북악스카이웨이로 가는 왕복 2차로 도로에서 폭우로 토사가 유출돼 안전 펜스가 무너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상 기온으로 인한 국지성 호우가 노후 건축물 붕괴와 토사 유출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간헐적으로 강하게 비가 내리게 되면 흙 속에 물이 마르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 토사가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을 짓기 위해 산자락을 자르고 옹벽을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인공적인 활동이 산사태를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옹벽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전 교수는 "토사가 흘러내리는 자연 사면이나 옹벽·석축이 무너지는 인공 사면 모두 산사태로 보는 것이 맞다"며 "노후한 옹벽은 배수 구멍만 만들어줘도 붕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자연 사면이든 인공 사면이든 전수 조사를 통해 인명 피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무너져 내린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주택 옹벽의 사고 이전 모습. 옹벽을 따라 가스관이 지나가고 있다./사진=독자제공


관리 당국 사각지대 '사유지', 사고에 속수무책…자연·인공 산사태 대책 마련 절실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 한 주택의 옹벽 붕괴 현장. 이수곤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전 교수가 금이 간 벽을 가리키고 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안쪽으로 금이 간 벽을 막기 위해 검게 시멘트를 덧댄 자국이 보인다./사진=최지은 기자
최근 사고가 이어지는 사유지 주택의 경우 관리 당국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산사태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산림청은 '전국 산림'이 관리 대상이다. 일반 평지나 공사 현장의 산사태는 소관이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률 시행령(급경사지법 시행령)에 따라 급경사지를 관리하고 있다. 급경사지법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급경사지는 지면으로부터 △높이 5m 이상 △경사 34도 이상 △길이 20m 이상 인공 비탈면, 지면으로부터 △높이 50m 이상 △경사도 34도 이상 자연 비탈면 등이다.

이번 삼선동 주택의 경우 행안부의 급경사지위험지역이나 산사태위험지역에서 빠져있었다. 시장, 구청장 등이 재해 예방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급경사지 관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지만 별도로 지정되지 않았다. 방씨는 이전에도 옹벽 붕괴가 우려돼 몇 차례 구청에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구청에서 지속해서 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사유지에 대한 점검은 한계가 있다"며 "이번 사례의 경우 급경사지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관리 대상에서 빠져있었다. 신고 접수 후 육안으로 점검하고 정밀 안전 진단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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