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자초한 규제, 멀어진 혁신

머니투데이 이학렬 금융부장 | 2024.07.25 05:07
현재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는 강력하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는다. 처음 도입된 2018년엔 지금과 달랐다. 당시 DSR 규제는 차주별로 적용하지 않았다. 금융회사별로 고DSR 비중을 일정 비율 이내로 관리하도록 했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많은 대출을 받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금융회사별로 고DSR 비중이 달라 A회사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더라도 B회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금융당국은 "획일적 규제비율을 제시하지 않고, 금융회사가 여신심사 전 과정에 DSR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머니투데이는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선 발품을 팔아야 하는 '론쇼핑' 시대가 열렸다며 자율성을 높이 평가했다.

자율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차주별 DSR 규제가 생겼다. 금융회사의 자율적 대출심사 여지는 사라졌다. 금리와 만기가 같으면 어느 회사를 가든 대출한도가 같아졌다. LTV(담보인정비율) 규제처럼 DSR 규제도 개인별로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를 정하는 규제로 바뀌었다. LTV 규제가 금융회사, 담보물 중심이라면 DSR 규제는 차주, 소득 중심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DSR 규제가 자율성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자율적 규제로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반발도 작용했다. 대출로 먹고 사는 대형 은행은 고객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두 같은 규제를 적용받기를 원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들의 불편함'이었다. 여러 금융회사의 대출을 알아보는 발품은 불편함이었다. '검색비용'이라는 가격 인상 요인도 발생했다. 대형 은행은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지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규제를 받아들였다. 검색비용을 줄여주는 핀테크가 설 자리도 사라졌다.

보험업계에서 새 회계기준 IFRS17 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IFRS17는 보험 회계에서 쓰이는 여러 가정을 보험사별로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적용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보험회사별로 주력 상품, 가입자 등이 다르니 회사별로 다르게 가정할 수 있음을 인정한 제도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보험사의 가정에 '원칙'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당장 이익이 많이 나도록(혹은 많이 나게 보이도록) 가정하는 것이 '원칙'처럼 보일 정도다.

결국 당국이 나섰다. 회사별로 다른 가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손을 대는 이유는 '재무제표의 비교가능성'이다. IFRS17엔 가정과 실제가 다른 것이 예실차로 드러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자정 기능이 있다. 하지만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당국이 나서기 전 보험사의 피튀기는 싸움이 있었다. 어느 회사가 순이익 1등이냐, CSM(계약서비스마진) 1위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월급쟁이 사장이 주주들에게 설명했지만 이해를 구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제 모습을 찾을 거라는 월급쟁이 사장의 설명을 경쟁에서 진 '패배자의 핑계'로 들었다.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시작하자 보험사들은 또 한번의 피튀기는 싸움을 준비중이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지금 유리한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길 원한다.

금융권은 경직된 사고 때문에 비판받기 일쑤다. 경직된 사고의 이유 중 하나가 수많은 규제다. 규제엔 법과 시행령, 규칙만 있는게 아니다.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은 그 어떤 규제보다 강제성이 강하다. '구두개입'은 법보다 가까운 주먹과도 같다고 한다.

다행히 일부 규제는 당국 노력으로 사라지고 있다. 규제가 사라지면 혁신이 자란다. 전세계 첫 대환대출 플랫폼, 한화생명의 인도네시아 은행업 진출 등은 규제 완화의 결실이다. 하지만 규제가 사라지는 지금도 새로운 규제가 생기고 있다. 일부는 금융회사가 자초한 것이다. 서로 싸우다 당국에 조정을 바라면서 생겼다. 당국이든, 금융회사든 혁신을 외치고 있다. 혁신을 가져올 자율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되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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