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11번 출구 앞. 폭우로 침수와 하수 역류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해 설치한 '수방용 모래마대 보관함' 보관함을 열어보니 모래주머니 대신 플라스틱 음료수병, 테이크아웃 잔 등 쓰레기가 가득했다. 직접 열어보지 않으면 이같은 관리 실태를 알 수 없었다.
모래주머니는 쓰레기 아래 파묻혀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모래주머니는 폭우 시 차수판을 설치할 때 바닥과 틈새를 막는 비닐류를 고정하는 데 사용하거나 하수 역류를 막기 위해 쓴다.
해당 보관함 옆에 놓인 또 다른 보관함에도 쓰레기가 들어있었다. 보관함을 열어젖히니 지나가는 시민들이 고개를 돌려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11번 출구에서 10m쯤 떨어진 보관함 2개는 쓰레기가 없었지만 모래주머니 양이 적었다. 용량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일대 다른 주체가 관리하는 보관함과 달리 자물쇠로 잠기지 않아서 누구나 열어볼 수 있었다.
4년전 침수 피해가 극심했던 강남역 일대의 수방용 시설이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일대 상인들은 "올해는 대비가 잘 됐을 것"이라고 관리 당국에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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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강남역 워터파크'…상인들 기억 또렷이━
이곳 일대는 2020년과 2022년 8월 장마철에 침수 피해를 겪었다. 2020년 8월에는 강남역 11번 출구 앞 하수가 역류하면서 맨홀 뚜껑이 빠지고 흙탕물이 인도를 뒤덮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강남역 9번 출구 계단으로 빗물이 들어가면서 지하상가 소규모 점포들이 피해를 봤다.
강남역 9번 출구 쪽 지하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생생하게 침수 피해를 기억했다. A씨는 "계단에서 빗물이 내려오더니 가게 안까지 들어오면서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첨벙첨벙' 소리가 났다"며 "대비가 잘 됐는지 지난해와 올해는 별다른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하상가 내부에는 의류, 화장품을 취급하는 소규모 점포 200여개가 있다. 상가에 위치한 옷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는 30대 B씨는 "우리 점포는 물길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서 전에도 옷이 젖거나 하는 피해는 없었다"면서도 "상가 내부에서도 출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점포들은 라인 전체가 침수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가 계속 많이 안 오기를 바란다"며 "직접 침수 피해를 막을 방법이 따로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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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서초·송파·강남서 '비 가장 적게 와'…침수 피해 상가, 지하 임대 포기━
10년째 해당 상가 1층에서 옷 수선집을 운영한 70대 C씨는 "2020년과 2022년 장마철에는 우리 점포가 1층인데도 캐비닛이 다 잠길 만큼 빗물이 차올랐다"며 "지하상가는 전부 운영을 안 하고 침수 피해 이후에 상가에서 차수판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번 집중 호우 기간 서울 강남권에서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 지난 16일부터 3일간 서울 내 누적강수량은 서초구가 147.0㎜로 가장 적었다. 이어 △송파 152.5㎜ △관악 153.5㎜ △강남 154.0㎜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서울 동북권에서 △노원 288.0㎜ △동대문 265.5㎜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안심하기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장마 백서에 따르면 1991∼2020년 중부지방 평균 1차 우기, 즉 장마 종료일은 7월26일이다. 평년대로라면 3일 후쯤이 장마 종료 시점이다. 다만 '가을장마'로 불리는 2차 우기는 장마철이 끝나고 폭염이 찾아온 뒤 태풍과 함께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기상청은 이날 "태풍 발생으로 장마 종료 시점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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