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전자책은 누구의 것인가

머니투데이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 2024.07.23 02:05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회사 컴퓨터에 들어 있는 내 개인 파일은 과연 온전히 나의 것일까. 클라우드 드라이브에 올려놓은 내 파일들은 과연 온전히 나의 것일까. 그렇다면 어제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전자책은 과연 온전히 나의 것일까. 내가 법적 권리를 갖는 것은 맞겠으나 어떤 물건을 물리적으로 소유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분명하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적응할 필요는 있지만 그 서비스들이 예전과 같은 물리적 배타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온라인 세상은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세상을 흉내 내고 그 세계의 정서를 떠올리도록 세심하게 고안됐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중략) 가끔 변호사들은 소유권을 번들 오브 스틱(bundle of sticks)이라고 표현한다. (중략) 이 표현은 소유권을 쪼개거나 합칠 수 있는 개인 간 권리의 집합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중략) 우리가 온라인에서 뭔가를 구입할 때 우리가 사는 건 다발 전체가 아니라 나뭇가지 두세 개뿐이라는 사실을 호된 경험으로 배웠다. 나머지 다발은 판매자가 장악한다. (중략) 게다가 이들은 내가 구입한 나뭇가지에 조건까지 붙여서 자기네 필요에 따라 내 나뭇가지를 도로 가져갈 수도 있다."(마이클 헬러·제임스 살츠먼 '마인' 중)

사실 온라인에서 무엇인가를, 특히 무형의 것을 '구매'한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르다. 이미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한두 번 해봤다. 우후죽순으로 전자책 사업에 뛰어든 사업자가 2014년 줄줄이 전자책 사업을 중단했다. 신세계I&C, 11번가, KT미디어허브 외에 삼성전자 등도 그 중 하나다. 대부분 구매자의 권리가 교보문고 등으로 이관됐지만 저작권 확보문제로 콘텐츠 이관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거나 이관받은 사업자에 문제가 생긴 불쾌한 사례도 많았다. 출판사가 자체 콘텐츠를 계속 공급하기로 하고 선불로 판매한 전자책 서비스도 있었는데 몇 년 후 서비스를 접기로 하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많았고 추가 콘텐츠 제공 약속은 사라진 채 다른 전자책 사업자로 콘텐츠가 이관됐다.

클라우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과거 필자도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다 중지키로 하면서 그동안 저장한 엄청난 분량의 파일을 옮기는 과정에서 크게 고생한 경험이 있다. 지금 이용하는 서비스도 상당한 구독료를 지불하면서 이용 중인데 나중에 서비스를 해지할 경우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오해를 막기 위해 언급하면 필자는 전자책을 매우 선호한다. 30평대 아파트 거실 한쪽을 막고 있는 이중책장이 이미 꽉 찬 상태에서 추가 종이책 구매가 수반하는 부동산 업그레이드의 압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 또한 전자책의 그 탁월한 주석 및 찾아보기 기능을 필자는 사랑한다.

구매한 전자책도 상당한 분량이다. 당연하게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읽은 구절처럼 누가 다 읽은 책만 가지고 있고 싶겠는가. 종이책으로 다 읽고 중고로 팔고, 보관을 위해 전자책으로 재구매한 책도 꽤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마인'에서 인용한 문구도 읽고 보관 중인 전자책 색인에서 찾아 인용했다.

꼭 AI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정보는 유형의 자취를 지우면서 점점 더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다. 그 편리함과 효율성을 놓칠 수는 없지만 이 세계에서 우리의 정보 '소유' 속성이 결코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전 세계적 IT 장애가 그저 있을 수 있는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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