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점심 처음 먹네요."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보좌진과 점심을 먹으려는데 별안간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점심시간에 자신이 식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반응을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보좌진은 이번 국회가 개원한 후 두 달 가까이 식사를 거르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영감(보좌진들이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말)이 안 먹으니 우리도 먹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 또 다른 보좌진은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뛰어난 실력으로 정평이 난 그였기에 의외의 발언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출·퇴근길마다 아이가 눈에 밟힌다고 했다. 부모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아이에게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 때문이다. 밤낮없이 영감의 의정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보좌진의 업무 특성상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지려면 영감의 배려가 있어야 하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란다. 아이가 내 얼굴을 잊어버릴까 늦게라도 어떻게든 집에 들어가려 한다던, 비슷한 사정의 보좌진 얼굴들도 떠올랐다.
제22대 국회의 임기 시작 이후 민주당의 당론 법안은 40개를 훌쩍 넘겼다. 법안 하나하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숫자'만큼 보좌진 등 민주당 구성원들의 땀이 담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특검(특별검사)법과 탄핵소추안, 검찰 개혁 등 민주당이 추진하겠다고 내건 입법 과제를 보면 끼니를 챙기는 일이나 아이 등교와 같은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영역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이재명 당 대표 후보는 당 대표직 연임 도전을 선언하며 '먹사니즘'을 내걸었다. 민주당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유능한' 정당임을 입증해 보이겠다고도 했다. 나라의 존립을 위협하는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등 국가적 난제 앞에 먹고사는 민생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다짐은 울림이 있다. 다만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과정에서 누군가의 삶이 마모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후보의 먹사니즘이 먼저 민주당 안에서 체감된다면 그 울림에 힘이 더 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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