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4개월 노심초사' 팀코리아 24조 체코원전 수주 되돌아보니…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세종=최민경 기자 | 2024.07.19 04:29

(종합)

사진은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체코 정부가 내각회의를 열고 두코바니 5·6호 신규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자를 결정한 17일. 내각회의가 한창인 시간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선 원전 수출 관계자가 하나둘 체코 국영방송을 띄운 화면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르면 17일 결과가 나온다", "한수원이 근소하게 앞서 있다" 같은 소문은 무성했지만 체코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진 한치의 방심도 있을 수 없었다는 게 한수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게 초초하게 4시간여가 흐른 뒤 두코바니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으로 한수원을 선정했다는 체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됐다. 지난 2년4개월간의 수주노력이 '15년만의 원전수출 쾌거'라는 결실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기존 가동 원전의 수명경과와 전력사용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최대 4기까지 신규 원전 건설을 결정한 체코정부가 이번 두코바니 원전 입찰을 낸 것은 2022년 3월이었다. 당시만 해도 '팀코리아'의 수주를 점치는 사람은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유럽 원전 시장을 주도하는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등의 무대라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은 지난 정부에서 탈(脫)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했다. 2009년 수주한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의 공사는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원전을 퇴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외 일감을 기대하긴 어려웠다고 한다.

해외 원전수주가 단순히 원자로 기술과 건설능력을 파는 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원과 협상이 뒤따라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형 원전의 해외 수출길이 막힌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원전 수주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 "탈원전을 추진했던 부분"이라고 밝혔다. 안 장관은 "다른 사업과 다르게 원전은 착공부터 1호기가 실제로 가동할 때까지 35~36년 세대를 건너간다"며 "오랜기간 정책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한데 탈원전을 겪으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체코원전 입찰은 '팀코리아'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전략기술을 둘러싼 미중 패권경쟁 등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일찌감치 입찰의사를 포기했다. 현 정부도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한국원전의 국제 신뢰 회복에 나섰다.

최초입찰과 수정입찰 등 1년반 넘는 시간동안 프랑스의 EDF,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의 3파전 구도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말 입찰에서 제외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최종입찰서류는 한수원과 EDF 두 곳만 제출했다. 프랑스와의 정면 승부로 접어들면서 입찰당사자 뿐만 아니라 양측 정부, 연구지원기관, 민간기업 등이 모두 달려드는 총력전으로 번졌다.

프랑스의 행보는 과감했다고 한다. 임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이 체코를 찾을 때 마다 현지 언론에선 '정상급' 원전협력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가 나왔다. 유럽 내 원전동맹 주도국이자 EU(유럽연합)의 중심인 프랑스의 '고공지원'을 무시할 수 없는 탓에 한수원에는 "프랑스가 체코 원전을 수주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날아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개최된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팀코리아는 민관의 동시다발적인 수주행보로 맞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NATO(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찾은 미국 워싱턴에 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을 만난 것을 비롯해 3차례 장상급 세일즈 외교를 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역시 올해 4월 이후에만 세차례, 우선협상자 결과 발표 직전까지 체코 다녀오며 경제협력카드로 체코 정부를 설득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민간 분야에서 접근을 주도했다. 한수원은 두코바니 지역 인기스포츠 아이스하키에 후원을 이어가고 봉사활동과 문화교류 등으로 한수원의 친근한 이미지를 체코 현지에 심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겼다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없었다"며 "오전 5시반부터 대기한 한수원으로부터 사업 설명을 들은 체코 산업부 고위직이 '한국사람들 대단하다'라고 반응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마음을 사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체코 간 산업장관…'경제협력 패키지'로 원전 어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황수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7.18. /사진=뉴시스
"한국의 입찰이 모든 평가 기준에서 더 우수했다."(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한국 원전이 유럽 시장 관문을 뚫은 배경엔 한국 산업 전체의 경쟁력과 그간 쌓아온 친선의 저력이 한 몫 했다. 기본적인 가격·품질·납기 등 3박자 경쟁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국내 체코 진출기업들이 구축한 우호적 협력 환경이 밑바탕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체코 정부에 친서를 보내 체코 내 인력·인프라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전기차·AI(인공지능) 등 '첨단산업협력 패키지' 등 양국 경제협력 청사진을 제시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브리핑을 열고 "산업협력을 긴 호흡으로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지 윈윈하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협의한 것들이 오히려 (수주에) 더 작용을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지난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안 장관은 원전 건설 수주를 위한 윤 대통령의 친서를 품고 체코 프라하에서 페트르 피알라 총리를 만나 산업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기존 진출 기업을 통한 투자 여력과 산업협력을 일종의 '패키지'처럼 제시한 셈이다.

안 장관은 "체코는 제조업 중심의 개방형 경제를 끌고 가는 나라이다 보니 체코의 산업 발전 모형과 우리의 산업 발전 모형이 굉장히 유사해 산업적으로 협력할 부분이 많다"며 "1~2개 우리 기업이 투자를 더 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체코와 기술협력을 통해 제3시장으로 갈 수 있는 중요한 산업 생태계를 같이 구축하는 안을 갖고 협의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체코 정부에 원전으로 전력 인프라를 갖추면 우리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더 많아진다는 점도 어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장관은 "이번 원전 투자로 (체코 내) 에너지 환경이 바뀌면 우리 산업계에서도 상당히 고려사항이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산업 전체 차원에서 잠재성이 큰 유럽 시장을 들어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개 韓기업 체코 진출…투자 경험 갖춰


정부는 체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인력·산업 기반 운용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워왔다. 한국은 100여개 기업이 체코에 진출하는 등 현지 투자 경험이 풍부하다. 한국 기업들은 체코에서 1만4000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해 산업 기반을 운용한 경험이 있다. 원전 4기 건설을 위해 수천명 규모의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 한국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안 장관은 "체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다양한 사업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것이 기반이 돼서 체코 측에서도 우리가 제시한 여러 가지 사업에 관련되는 내용들이 실제로 경제성이라는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고 합리적이라고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피알로 총리 이외에도 정부 관계자, 원전 관련 기관을 만나 막판 설득에 나섰다. 체코 원전 수주전이 프랑스와 한국의 2파전으로 좁혀진 후 안 장관이 체코에 특사로 방문한 것만 총 세 차례다. 안 장관은 지난 4월에도 체코를 방문해 △첨단산업 공동 R&D(연구개발) 확대 △수소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 △원전 연계 수소생산 △원전기술 및 SMR(소형모듈원전) 협력 △전력기자재 해외진출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대통령부터 실무진에 이르는 고위급 교류와 함께 △지난해 3월 한-체코 직항로 재개 △지난해 9월 원자력 규제협력 MOU(업무협약) △올해 4월 TIPF(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 합의 등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팀 코리아' 지지한 두코바니 지역주민…현지화율 60% 도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역시 2022년 8월 취임 이후 올해까지 7번 체코를 찾아 사업참여 의지와 한수원의 역량을 피력했다. '한체 원자력 및 문화교류의 날'. '한-체 원자력 기술교류회(R&D)' , '두코바니 지역협의회 라운드테이블', '한-체 수소협력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한수원에 대한 현지 우호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한수원이 제시한 60% 수준의 현지화율도 도움이 됐다. 200여개에 이르는 잠재협력사를 발굴하고 아이스하키팀 후원, 방역물품 지원, 봉사활동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긴밀히 소통해왔다. 원전건설 예정지의 비영리단체인 두코바니 지역협의회는 지난달 '팀 코리아'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황 사장은 "예전부터 체코 현지 기업 제작 분야에 대략 한 200개 기업, 시공까지 포함해 한 700여 개 기업과 접촉을 다 마쳤다"며 "그 기업들한테 '우리 회사에 입찰할 수 있는 자격을 빨리 확보하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특히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게 두산이 투자한 두산스코다파워라는 터빈 회사가 있다"며 "터빈을 거기서부터 공급받기로 해서 현지화율의 상당 부분을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지화에 우리 국내 기업이 참여를 못 하는 게 아니고 국제 경쟁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참여율이 제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원전분야 협력을 100년 이상의 협력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로 보고 이를 매개체로 체코와 협력의 폭과 깊이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TIPF 체결 △과학기술·산업·에너지 공동 R&D 확대 △직항로 증편 등 인적교류 활성화 △원자력 인력양성 등 유망 협력사업들을 적극 발굴·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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