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은 올해 의약품 구매를 위해 약국 방문 경험이 있는 전국의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24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지난 10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약국 외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 종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31.5%는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2.9%는 판매 종류 축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2012년 약사법을 개정해 24시간 편의점 등에서 안전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법상 최대 20개 품목까지 허용할 수 있지만 정부는 해열제 5종, 감기약 2종, 소화제 4종, 파스 2종 등 총 13개 품목만 지정했다.
제도시행 초기부터 13개 품목 외에 지사제, 제산제, 진경제 등의 추가 지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시행 6개월 후 소비자들의 안전상비의약품 사용실태 등을 중간 점검하고, 시행 1년 후 품목을 재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행 이후 10년 동안 품목 재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12년 전에 지정된 13개 품목이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고 그마저도 2개 품목은 국내 생산이 중단되면서 약국 외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약은 11개 품목뿐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0.4%는 현재 약국 외에서 판매하고 있는 안전상비약 품목이 "같은 선택지에 놓인 약품이 많다"고도 대답했다.
현재 판매가능 품목으로 지정된 안전상비약은 △타이레놀정 500mg △타이레놀정 160mg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mg △어린이용 타이레놀 현탁액 △어린이 부루펜시럽 △판콜 에이 내복액 △판피린 티 정 △베아제 정 △닥터베아제 정 △훼스탈 골드 정 △훼스탈 플러스 정 △제일쿨파프 △신신파스 아렉스 등이다.
해열진통제 5종, 감기약 2종, 소화제 4종, 파스 2종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어린이용타이레놀 80㎎'과 '타이레놀정 160㎎'은 국내 생산이 중단되면서 실질적으로 품목에서 제외됐다. 성분 기준으로 품목을 나누면 제품이 너무 다양해져 의약품 오남용 위험 높아진다는 우려 때문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같은 선택지 안에 놓인 약품이 다른 품목으로 지정되면서 구매할 수 있는 종류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취급 확대가 필요한 의약품으로는 감기약(34.7%, 중복응답)을 가장 먼저 꼽았으며, 해열제(33.8%), 상처 연고 및 크림(33.3%), 진통제(32.1%)가 그 뒤를 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상당수가 해외 다른 국가처럼 편의점, 드럭스토어 등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약품의 종류가 많아질 필요가 있다(60.2%)는 데에도 동의를 표했다.
현재 약국 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일반의약품에 '어린이용' 약이 허용될 필요가 있다(52.3%)는 데에도 과반이 공감을 표했다.
편의점 등에서 상비약을 판매하지 않아 불편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5.9%에 달했다. 약사법 시행규칙을 보면 감기약이나 소화제, 해열진통제, 파스 등의 안전상비약을 팔려면 24시간 연중무휴 점포만 가능하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24시간 유인 편의점이 아니면 사실상 상비약 취급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상비약 취급 조건에서 '24시간 운영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올해 초 의약품 접근성 개선과 현장 여건을 고려한다는 취지로 해당 규제를 '규제뽀개기' 안건으로 선정했다.
전국의 편의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만5580개다. 이중 79%만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24시간 연중무휴' 규제만 풀려도 산술적으로 전국의 1만1505개의 편의점에서 추가로 안전상비약 판매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다만 의약품 확대의 필요성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약품 오남용 문제'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큰 모습을 보였다.
응답자의 44.5%는 일반의약품을 약국 밖에서 판매할 경우 의약품 중복 복용이 우려된다고 답했고 41.3%는 악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41.7%가 중복 복용을 우려하고 36.4%가 악용 문제를 우려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마약 등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정책 추진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사에서도 '개인별 약품 구매 데이터화' 등 국가 차원에서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62.7%, 동의율)는 데에 과반 이상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약국 외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약 품목수 확대를 검토하되 개인별 약품 구매 데이터화를 통해 상비약을 구매할 때 일정 수량 이외에는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정책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윤정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원은 "해외 주요국은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소비자의 안전과 의약품 접근의 편의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안전상비의약 품목 수 기준을 개선해 소비자의 의약품 접의 편의성을 높이고 안전 관리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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