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북한 가스라이팅과 진실 말하기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 2024.07.15 02:05
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정치학 대가 애런 윌다브스키는 저서 '권력에 진실 말하기'(Speaking Truth to Power)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질랜드에서 한 병사가 충분한 인원과 장비 없이 강 위에 다리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강둑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한 마오리 여성이 다가와 "왜 그렇게 슬픈가요. 병사님"이라고 물었다. 그는 해결책이 없는 문제 때문에 골치라고 답했다. 그녀는 즉시 웃으며 말했다. "힘내세요! 해결책이 없으면 문제도 없어요!" 윌다브스키는 이 역설을 통해 '고약한 문제'(wicked problem)의 창의적 해법이란 해결수단이 없는 문제를 수단이 있는 문제로 재정의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 상황은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체제 구축마저 요원하다. 최대 100기로 추정되는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 때문이다. 그간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에는 마땅한 해법이 없다. 지난 6월19일 평양에서 만난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의 밀월관계를 과시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탄도미사일과 핵기술을 제공할 전망이다. 쌍방 중 한쪽에 대한 공격시 상호지원을 제공하는 방위조약도 체결했다.

그런데 '북한을 변화시키는 문제'가 합리적으로 접근하면 풀릴 것이라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6·15 공동선언' 24주년을 맞아 윤석열정부의 대북 강경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마치 냉전 시절로 회귀한 듯한 위기상황"이라며 "싸워서 이기는 것은 하책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어렵지만 가장 튼튼하고 또 유능한 안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소속 의원들도 한국-미국-일본 군사협력에 치우친 편향외교가 동북아 안정을 허물고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가져왔다고 거들었다.


액면만 놓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나 이들의 주장처럼 핵 폭주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해온 북한을 마냥 따뜻하게 대하면 실제로 문제가 풀릴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는 현실에서 북한은 말 그대로 고약한 문제다. 북한을 길들일 수 있다는 과도한 이상과 목표에 집착한 햇볕정책은 북한의 호전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축적을 방해하고 대북정책 실패의 반복, 무모한 대북정책 실험조장 등의 폐해를 가져왔다. 북한은 우리가 관계개선을 간절히 원한다는 점을 이용해 필요할 때마다 우리의 일부를 가스라이팅해왔다.

대북정책의 목표는 우리가 현재 가진 정책수단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핵무기라는 수단이 없는 우리에게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평화체제 구축, 더 나가 한반도 통일은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대신 우리의 재래식 안보자산을 활용하고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이룸으로써 북한의 고삐 풀린 도발의지를 억제할 수는 있다. 그게 권력자에게 직언하기, 더 나가 주권자인 국민에게 진실 말하기의 핵심이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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