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우유팩 75% 재활용한 화장지…"안사요" 못 박는 공공기관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4.07.15 05:30

국내 우유팩 75%는 화장지로 재활용
정부 지원 없는데...중국, 동남아 수입산에 자리 내줘
친환경 구매 의무있는 공공기관도 구매 않아...절박한 생존 경쟁 내몰려
"우선 구매 품목 지정...EPR 분담금 지원해달라"

우유팩을 어렵게 재활용해 생산한 화장지(휴지) 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재활용 화장지의 수요가 컸는데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100% 새 화장지가 싼값에 유입되자 공공기관도 재활용 화장지를 점점 외면하고 있다. 제도의 허점 때문에 수입산 화장지가 '국내산'으로 둔갑해 팔리면서 국내 재활용 화장지 업계가 더 절박한 생존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안사요" 입찰 공고에 버젓이


경기도 하남시의 한 창고에 저장된 폐우유팩. 압축한 뒤 국내 화장지 원단 회사로 납품한다. 국내에는 우유팩을 세척해 버리는 비중이 작아 재활용이 매우 어렵지만 국내 화장지 원단 업계가 원가 절감, 자원순환 동참을 위해 재활용하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14일 화장지 원지 업체 대왕페이퍼의 김두훈 이사는 "우유팩을 세척하지 않고 배출해 어렵게 재활용하지만(관련 기사 : "우리나라 우유팩 분리배출 엉망"…이래서 일본서 수입한다[르포]) 공공조달시장마저 재활용 화장지 구매를 줄인다"며 "재활용 사이클의 마지막을 지키는 화장지 업계는 점차 생존경쟁에 몰린다"고 호소했다. 한해 공공기관이 구매하는 화장실용 화장지 규모는 약 600억원이다. 과거에는 재활용 화장지가 과반이었지만 현재는 점유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게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100% 새 천연펄프로 만든 화장지가 저렴한 가격에 국내로 점점 더많이 유입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생산설비를 급격히 늘린 결과 새 판로가 필요해 한국으로 눈을 돌렸고, 동남아는 나무가 빨리 자라는 기후의 이점으로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지난해 위생용지 수입량(15만톤)은 전년 대비 41.7% 늘었고 이중 99%가 중국과 동남아 물량이었다. 민간 시장도 과거에는 주방에서 써야해 위생성에 민감한 키친타올도 우유팩을 재활용해 만들었지만 현재는 수요 감소로 자취를 감췄다.

공공기관은 녹색제품구매법과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녹색제품(환경인증 등을 획득한 제품)을 구매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따로 규제는 없어, 국방부의 경우 수년째 입찰 공고에 "재활용 화장지는 구매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들도 재활용 화장지 구매를 줄이는 추세라고 전해졌다.


"화장지 업계가 안 써주면 누가 써주나"


김두훈 대왕페이퍼 이사가 우유팩 재활용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 재활용된 우유팩의 75%는 화장지로 재활용됐다. 화장지 원단 업계가 재활용을 멈추면 우유팩 재활용의 사이클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김성진 기자.
우유팩을 재활용했다고 화장지의 흡수성과 강도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우유팩의 펄프 자체도 강도가 강하고, 재활용 화장지라고 100% 폐우유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70%는 새 펄프다. 나머지 30%는 폐우유팩과 폐종이컵이다.

화장지 업계는 영세하지만 전국적인 우유팩 재활용의 사이클을 지탱한다. 환경부와 제지업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유팩 9561톤이 재활용됐고 이중 약 75%(7200여톤)가 화장지 제조에 쓰였다. 나머지 25%는 온갖 폐지와 섞여 택배박스, 갱지 등으로 재활용됐다. 우유팩은 동남아의 활엽수 펄프보다 약 20% 비싼 북유럽과 북미의 고급 침엽수 펄프로 만들어 우유팩으로 한번 쓴 후에도 강도를 유지해 휴지, 핸드타올로 재활용할 수 있다.


류정용 강원대 종이소재과학과 교수는 "현재로서 우유팩은 화장지로 재활용했을 때 경제 효율이 가장 크다"며 "화장지 원단 업계가 재활용을 포기하면 전체적인 재활용 사이클 자체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재활용 '소년가장'...외로운 생존경쟁


화장지 업계가 받는 정부 지원은 없다. 우유팩을 재활용하면 세척 등 공정 때문에 새 펄프를 쓸 때보다 제조 비용이 약 2배 더 들지만 정부가 분담하는 부분은 없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상 분담금도 없다. EPR은 우유팩같은 폐기물을 생산한 업체들에게 분담금을 거둔 뒤 재활용 업계에 지급하는 제도로, 현재 우유팩 1kg당 195원 분담금을 걷지만 폐우유팩을 수거하는 업체들에만 지급한다.

화장지 원단 업계는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수입산 화장지의 가격이 워낙 저렴해 재활용으로 제조원가를 낮추려고 안간힘이다. 더구나 중국과 인도네시아산 화장지 원단이 국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국내에서 재단, 포장 등 단순 가공만 거치고 '한국산'으로 둔갑해 국내 업계는 국산품으로서 이점도 얻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업계가 우유팩을 재활용하며 제조원가를 낮추려면 시크너(Thickener) 등 고가의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호소가 나온다. 김두훈 이사는 "정부가 재활용 화장지를 우선 구매품목으로 정하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상 분담금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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