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소고기 값이 비싼 이유는 미국·호주와 달리 한반도가 소를 대량으로 키우기 적합한 지형이 아닌데다 한국 축산농가들이 구제역 파동 등을 겪으면서 공급이 줄고,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여기에 도축 후 중간 유통을 거치면서 비용이 곱절 이상 오르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만약 짧은 시간 숙성 과정을 거쳐 일반 등급의 소고기를 1+, 또는 2+ 이상의 맛과 풍미를 내는 소고기로 만들어 낼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또 축산시장과 유통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수요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산업계도 오랜 숙성기간에 따른 축산물 재고 부담을 내려 놓게 될 것이다. 또 산업 경쟁력이 올라가고, 소비자 만족도가 커지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글로벌 소고기 시장을 선도하는 날도 성큼 다가 올 것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그 '게임체인저(game-change)' 발굴에 몰두하는 이유다.
그동안 '신선한 상태의 소고기보다 오래 보관한 소고기가 더 맛있다'는 경험에 착안해 다양한 건식숙성 연구가 진행돼 왔다.
'소고기 숙성'은 고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효소 또는 첨가된 효소로 고기의 결합조직(connective tissue) 단백질을 분해해 아미노산을 만들고, 고기를 연하게 해 감칠맛 등을 증가시키는 과정이다.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공학과 김진세 농업연구사(유통품질공학연구실)는 고기 내부를 라디오파로 30도 인근에서 가열하고, 냉풍으로 표면을 냉각·건조시키는 방식으로 세균 걱정없이 48시간 만에 건식 숙성 효과(3주이상)를 얻을 수 있는 '라디오파 숙성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김 연구사는 "효소가 온도가 높을 수록 반응이 활발하고, 단백질이 변성되는 40도 보다 약간 낮은 온도로 보관해야 익지 않은 상태로 빠른 효소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세균이 가장 활발하게 자라는 온도 역시 이와 비슷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숙성을 위해 고기를 무작정 높은 온도에 보관하기 어려웠고 적정 온도를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건식 숙성고 대신 라디오파 숙성 장치를 이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45일 걸리던 숙성 기간이 2일로 단축돼 건식 숙성육의 유통 산업화를 앞당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K-숙성육'의 브랜드화로 미국·호주 등 스테이크 종주국과의 경쟁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기술은 국민 건강은 물론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축산농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전망이다. 라디오파 숙성기술로 저지방 소고기의 소비가 늘어나면 지금처럼 소를 과도하게 살찌우는 데 들어가는 사료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지방섭취로 인한 건강 적신호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라디오파 숙성육 소비가 활성화 될 경우, 축산농가의 경영비 절감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소 사육에 보통 30개월이 걸리지만 이중 5~6 개월은 마블링 개선에 그 목적이 있는 만큼 이 기간을 생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적인 라디오파 숙성육 보급이 확대되면 비싼 소고기를 둘러싼 양극화 문제도 개선될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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