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텅' 골칫덩이 된 지방대 기숙사…적자 탈출한 비결[르포]

머니투데이 제천(충북)=김온유 기자, 이창명 기자 | 2024.07.10 04:25

[I-노믹스가 바꾸는 지역소멸]④충북 제천

편집자주 | 흉물 리모델링·님비(기피·혐오)시설 유치와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Innovative Ideas)'를 통해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I-노믹스(역발상·Inverse concept+경제·Economics)'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비영리단체(NGO)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역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재래시장과 빈집, 발길 끊긴 탄광촌과 교도소, 외면받는 지역축제 등이 전국적인 핫플(명소)로 떠오르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직접 이런 사례를 발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국내 거주 고려인 수 추이/그래픽=김지영
지난달 28일 찾아간 대원대학교 충북 제천 캠퍼스는 학기 중인데도 한적했다. 다른 지방대와 마찬가지로 신입생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서다. 제천시 관계자는 "10년전만 해도 활기찼던 캠퍼스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원대의 경우 학생수가 급감하면서 기숙사를 채우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대원대의 기숙사 수용률(수용가능인원/재학생수)은 △2021년 45.1% △2022년 48.7% △지난해 51.3%로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규모 고려인 유치계획을 갖고 있는 제천시는 대원대의 이런 상황을 눈여겨봤다. 일단 장기 체류 시설 확보가 시급했고, 낙후 시설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기보단 현재 갖춰진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제천시는 대원대와 협약을 통해 기숙사 4개동 가운데 1개동을 유상으로 제공받기로 했다. 대원대 입장에선 적자가 쌓이는 기숙사 문제를 해결하고, 제천시는 고려인 이주민 숙소를 확보해 서로 '윈윈(win-win)'한 셈이다.

대원대 관계자는 "재학생이 10여년 전 약 2700명에서 현재 약 1800명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기숙사를 운영할 만큼의 비용 충당이 되지 않았다"며 "기존 학생들이 납부했던 기숙사비 수준으로 이용료를 받고 있고 현재 캠퍼스 내에서도 학생들과 고려인 사이에 문제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골칫거리로 여겨졌던 대원대 기숙사 1개동은 지난해 10월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재외동포지원센터는 제천시 고려인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지는 초기 이주민들의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5월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를 방문해 고려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제천시

제천시는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으로 2013년 13만6800여명이었던 인구는 지난 6월 기준 12만9600여명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젊은층이 계속 도시를 떠나고 있다. 현재 제천시의 29세 이하 인구는 3만1633명에 불과하다. 제천시가 고려인 이주 및 정착을 통해 지역에 젊은 활력을 되찾겠단 전략을 세운 이유다.

지난 5월까지 75세대 170명, 이달 현재 291명의 고려인이 제천으로 이주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제천시는 올해 안에 국내·외 고려인 100가구 300명, 3년 안에 1000명을 유치한단 계획이다. 고려인 동포들의 경우 강제징용이나 독립운동이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만큼 국내 이주 정착에 정서적 거부감이 크지 않아 서둘러 유치할 수 있단 판단에서다. 실제로 2007년 국내거주 고려인 수는 2392명에 그쳤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최근 들어 젊은 고려인들을 중심으로 한국 이주를 원하는 분위기다.


이날 함께 둘러본 재외동포지원센터는 102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내부식당과 헬스장부터 외부엔 널찍한 주차장과 정자까지, 임시로 체류하기엔 충분한 시설이었다. 이곳에 들어선 고려인들은 보통 가족단위로 머무르고 있다. 캠퍼스 내부와 달리 센터 앞에선 고려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현재 기숙사에 거주하는 강알렉산드르(45세·남)는 "제천시에서 숙소를 제공해 이주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제공하는 식사나 시설에 충분히 만족하고 시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로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제천시는 지역 이주 고려인 동포들에게 4개월간 단기 체류 시설(기숙사) 제공을 비롯해 △한국어·한국문화 등 정착 교육프로그램 운영 △취업·주거지 연계 △보육·의료 지원 △우수인재 우대지원 △법률생활고충 상담 등 다양한 정착지원을 하고 있다. 또 지역 기업들을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여는 등 고려인 동포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단순 일용직이 아닌 4대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조업과 제약회사 정규직 근무자들도 늘어나면서 고려인과 제천시 모두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고려인이라고 해서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동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천시 조례를 보면 고려인이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시기에 농업이민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와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과 그 친족들을 말한다. 그래서 생김새만 보고 고려인을 판단하긴 어렵고, 무엇보다 법적으로 여전히 외국인이다.

하지만 제천시에선 이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행정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고려인 300여명이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제천시로 이주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도 인구감소지역에서 운영하는 '지역특화형비자사업'이 있다. 거주(F-4)나 방문취업(H-2) 비자의 경우 대도시에선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1인 홀로 소득기준 GNI(국민총소득)의 100%를 충족해야 하는데 제천시에선 GNI 70%로 관련 기준이 완화되고, 배우자의 소득 합산도 가능하다. 또 4년 이상 거주하고,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를 이수하면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

최근 제천시로 이주한 김알리나씨(42세·여)는 "영주권 취득이 상대적으로 쉽단 얘기를 듣고 결정했다"며 "현재 사회통합프로그램 4단계까지 이수를 마친 상태로 꼭 영주권을 취득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원대에 위치한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에서 진행된 고려인 가족 봉사단 발대식 모습./사진제공=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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