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한국 문화와 교육의 세계화를 통한 평화 통일 기반 조성”

머니투데이 홍승일 MTN PD | 2024.07.09 10:15

MTN 감성인터뷰 [더 리더] 통일문화연구원 라종억 이사장



출연: 통일문화연구원 라종억 이사장
진행: 머니투데이방송 최보윤 기자


오프닝>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더 리더' 최보윤입니다. 대한민국은 2024년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죠.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바쁜 지금은 통일에 관한 관심도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30여 년의 시간을 변함없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며 통일로 가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인 곳이 있습니다. 오늘 '더 리더'에서는 통일문화연구원 라종억 이사장 모시고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출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선, 시청자분들이 통일문화연구원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 이렇게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통일문화연구원은 한마디로 말하면 통일을 안보개념이나, 국방개념이나, 외교 문제나 이런 거보다는 문화로 연착륙을 시켜서 그곳 주민들에게 자기네들의 시스템이나 지도부가 얼마 만큼 황당하다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써 문화로 통일을 소프트 론칭 시키자는 이런 취지에서 설립된 기관입니다.

- 조금 더 자세히 이 통일문화연구원 설립 목적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통일문화연구원은 사실 그, 1998년에 햇볕정책에 김대중 정권이 몰두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 탈북민이 450명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식구들까지 합쳐서 10만 명이 넘는 이런 시대가 됐습니다. 그걸 예견하고 그 탈북민들이 여기에 안정을 잘하고 또 많이 그쪽 정권에서 탈출을 해서 자유 대한민국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 통일의 길이다. 첫째가. 그다음 둘째는 탈북민들로 하여금 여기 와서 얼마 만큼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얼마 만큼 걸맞게 잘 사는가. 이거를 북한 동포들에게 알림으로써 그들의 의식을 전환하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게 만드는 소프트 론칭을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사실 그, 얘기가 나왔으니까 얘긴데 문화라는 것은 굉장히 영향이 큰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 알려진 것이 아이러니컬하게 6·25전쟁 때 하고 88올림픽 때였습니다. 88올림픽 때 우리나라가 이러한 문화 전파를 함으로써 동부 유럽의 냉전체제가 종식되었을 정도로 문화의 영향이 컸고 아메리칸 컬쳐가 결국 냉전체제의 소비에트를 허물어트린 것처럼, 이 문화의 영향이라는 건 엄청나게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저희가 이런 문화를 전파 함으로써 글로벌 시대에 선민정책도 되고 또 이민정책에 우리가 앞장서서 좋은 이민정책을 우리가 세울 수가 있고, 우리 문화를 알림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잘 알릴 수 있는 이런 그 취지에서 통일문화연구원이 설립이 됐죠.

- 제가 듣기로는 이 통일문화연구원 설립하시고 또 오랫동안 이렇게 남북통일을 위해서 힘써오신 데는 아버님의 영향이 크다고 들었거든요? 어떤 사연이 좀 있는 걸까요?

▶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저희 선친어른이신데, 저희 선친어른은 세기가 벌써 두 세기가 틀립니다. 1895년도에 태어나셨고 그때 천도교가 주관하고 있던 고려대학교 동아일보 중앙 고등학교인 중앙학원 재단을 우리 민족성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이걸 호남 여러분들이 김성수 씨 일가라던가 이런분들 하고 합작을 해서 인수를 하셨죠. 이제 저희 선친어른은 그때부터 교육의 필요성이 우리나라 독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생각해서 인수하셨죠. 사실은 저희 집이 저희 선친 때는 서울에서 부산을 가려면 저희 땅을 밟아야 ?다. 할 정도로 그때 호남 갑부였죠. 그런 재산을 잘 정리하셔 가지고 이런 교육기관을 인수한 이후에 일본으로 넘어가셔서 일본에서 젊은 나이에 와세다대학교 정경 학부 2학년 때 우리나라에 3.1운동 전신으로 독립의 정신을 일으키려 발기했던 2.8 독립운동 사건의 주모자였죠. 그때 일본에서 체포 되셔가지고 고난을 겪으시고 상해로 가서 상해 임정 위원이 되셨습니다 제가 특히 선친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는 일제 세상 때 창시개명을 안 하셨어요. 창시개명을 안 하신것이 그게 굉장히 자랑스럽고 그다음에 월남 파병을 할 때 그때 야당 국회 부의장을 하셨는데, 월남 파병 때 야당 국회 부의장으로서 찬성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환송사 하러 오실 때 국민대표로 야당 국회 부의장이신 저희 선친 라자, 용자, 균자 어른이 국민대표로 환송사 하신 게 저는 아주 집안의 자랑이고 제가 존경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아무래도 이제 통일에 대한 연일 그런 마음이 생기고 그쪽에 집중하게 돼서 오늘날까지 통일기반조성에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시라는 말씀이시잖아요? 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남북통일을 염원하신다. 이런 뜻이신 것 같은데요. 또 이사장님의 이 평소 인생관? 삶의 모토? 이거에 대해서도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 그거는 이제 저희 통일문화연구원에 모토도 되고, 저 개인의 좌우명도 되는데,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입니다. 그걸 한마디로 말하면 일이관지, 공자의 제자 자공이 선생님, 선생님 어떻게 매사를 다 그렇게 두루두루 잘하십니까? 그러니까, 예 자공아. 나는 하나의 이치로 세상 만물을 본다. 그게 제가 추진하고 있는 인문적인 문과 또 무도의 무자를 합해서 斌(빈) 자와 일맥상통 합니다. 인문적으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 이게 이제 좌와 우의 대화. 이게 성경 그 여호수아 1장 7절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너희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너희의 앞길은 형통하리라. 그래서 저는 유무중도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한마디로 하면 왼손과 오른손의 대화. 약한 자와 강한 자의 협력. 혼자 일은 되는 게 없습니다. 저의 모토가 그렇습니다.


/사진=MTN 감성인터뷰 [더 리더] 통일문화연구원 라종억 이사장


- 1998년에 통일문화연구원이 설립됐죠? 이때부터 지금 2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활동을 이어오셨는데요.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저는 처음에 이제 그, 탈북민들의 안정을 하고자 교육과 그들을 위해서 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까 이제 소위 우리의 동포들, 고려인, 사할린 동포 또 나아가서는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다문화인까지 이렇게 두루두루 섭렵하게 됐죠.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뭘 해줄까. 이 생각을 해서 카자흐스탄, 중국심양, 지금 우즈베키스탄까지 나가서 거기다가 통일 나눔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교육과 문화를 전파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그 나라에 선민 활동을 해서 의료지원을 하고 그 사람들이 거기서 골반이라던가, 무릎 수술을 제일 원해요. 그걸 하다 보니까, 그분들이 북한하고 가까웠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에 굉장히 우호적인 역할을 하고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인구가 굉장히 많아요. 여기에 자원도 엄청 많고, 또 사람들도 굉장히 대한민국에 우호적이고, 또 그분들이 교육 정도도 상당히 높아지면서 한국말을 잘합니다. 여기에다가 IT 교육이나, 여러 가지 기능 교육을 시켜서 우리가 이분들을 유입한다면 여기에 소위 노동자 계급보다 우수한 인력으로 받아들여서 국가 발전에 굉장히 이바지가 되고 잘 아시다시피 합계 생산율이, 총생산율이 뭐 0.6대로 떨어지고 있는데 이거에 대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번에는 통일문화연구원이 추진하는 사업에 진행 현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장님 통일문화연구원의 주 사업이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라고 들었거든요? 이게 어떤 사업인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 통일 나눔 아카데미가 주로 언어교육 문화교육인데 여기에서 수학을 꼭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학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세종재단에서 필수과목으로 우선 선택을 하고 세계에서 처음 수학 라이센스를 내는 작업을 추진하고 더불어서 문화에 대한 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아무래도 탈북민들과의 교류도 중요한 포인트일 것 같은데요. 국내 탈북민들을 위한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탈북민들에 대한 사업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맨날 얘기하지만 지금 우리 앵커님도 말씀하셨지만, 탈북민이 아니라 원래는 북한 이탈주민이 정식 용어인데요. 부르기도 힘들고 탈북민이라고 부릅니다. 옛날, 모 장관 있을 때 새터민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새터민이 뉴플레이스란 뜻이 아니고 원래 우리나라에서 옛날 성밖에다가 이름 없는 주검을 버리는 장소가 새터라고 알고 있어요. 이름을 탈북민으로 바꾸고 탈북민이 뭔가 탈출자라는 의미가 있어서 북한 이탈주민으로 바꾸고 요즘에는 또 어떤 모 인사가 북한배경 주민으로 하자. 이렇게 했는데, 탈북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북한 얘기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박근혜 정권때는 자유인이라는 거를 제시를 해서 모든 탈북민 단체에서 다 좋아해서 상당히 진전이 되다가 박근혜 정권이 어려움을 겪어서 그게 진전 못 됐는데, 우선 탈북민들이 선호하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확실하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 그다음에 탈북민들이 어느 때, 몇 살 때, 어느 직업을 갖고 있고 어디에 지금 정착해있는가에 대한 소위 빅데이터가 있으면 탈북민들 관리가 잘 돼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 제안하는 건 통일부에서 행안부 쪽으로 내려와서 지금 행안부에서는 이북5도청이 정말 아주 잘되고 있는 거로 아는데, 그들만큼 자기 도에서 내려온 탈북민을 더 잘 관리하고 알 수 있고 애착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북5도청에서 함경도에서 내려온 분들, 또 평안도에서 내려온 분들 이런 분들 몇 살 때 내려오고 직업이 뭐였고 지금은 이분이 경기도에 가 있고, 부산에 가 있고 이런 빅데이터 클라우드 장치로 관리가 돼 있어야 이분들에 대한, 앞날에 대한 어떤 로드맵이 나오지 않겠냐. 우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고, 탈북민들을 그동안에 제가 26년 동안을 접한 거로 볼 때는 이분들이 내려올 때는 여기 내려오면 무조건 잘 산다는 생각만 갖고 내려오는데, 내려와 보니까 경쟁이 심하고 이분들이 추구하는 건 무엇이냐 하면은, 주로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 학업이라던가, 교수가 되고자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강의를 하고 하는 그런 어떤 고급문화를 원해요. 근데 사실 그중에서 내가 이렇게 보니까 뭐 예를 들면, 시설 자격을 땄다던가, 또는 전기 자격을 땄다던가 이런 분들은 애기 낳고 여기서 잘살고 있습니다. 근데 강의하거나 그런 건 지난 정부에서 강의도 못 하게 했죠? 또, 강의자리 한다고 해서 무슨 항상 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 군부대 다니면서 강의하는 거고, 그래서 이제 우리 앵커분한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시중에 나가서 가끔 매장 같은 데 보면 조선족은 있어요. 조선족은 일하는 분들이 많이 있죠. 탈북민 보셨습니까? 탈북민들은 거의 없어요. 그분들이 자존심이 굉장히 강해서 그렇게 남의 밑에서 막노동이나 그런일 등 일선에서 일하는 걸 지양합니다. 굉장히 싫어합니다. 이런 거는 사고를 바꿔야 돼요.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자기 능력으로 돈을 벌어야 되고 생활에 그런 능력이 있도록 이런 교육을 좀 시키고 있는데 저희가 하는 거는 지금 특히 굉장히 어려운 게 있습니다. 뭐냐면, 탈북민 종류가 많아요. 탈북민들이 중국에 가서 애를 낳아서 오는 경우도 있고 여기 와서 애를 낳았을 때 그 대우가 다 틀립니다. 지금 저희가 가르치는 거는 중국에서 애를 낳아서 걔가 같이 부모랑 여기 왔을 때 그 애들을 학교에서 많이 가르칩니다. 모여 있으니까. 근데, 참 슬픈 일 중의 하나는 뭐냐면 저희가 한국말로 가르치면 중국말로 번역을 해야 돼요. 그다음에 걔네들한테는 탈북민에 대한 지원이 없습니다. 학교 지원이라던가, 학비 지원이라던가, 생활 지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재고를 해줘야 되고, 탈북민의 정확한 범주와 북한에서 낳거나 중국에서 낳거나 여기에서 낳거나 그런 그 제도적으로 동일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다음에 그 애들에 대한 교육이,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 이걸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게 저희 통일문화연구원이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할 그런 의무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사장님 지금 국내뿐만 아니고, 해외에서도 다양한 활동 이어오고 계시잖아요? 최근에 제가 우즈베키스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 저희 우즈베키스탄에 이제 통일 나눔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인과 우리나라의 고려인들을 주로 한글, K-컬쳐, K-POP 이런 문화 전파를 하고 그다음에 수학을 꼭 가르쳐야 됩니다. 수학을 안 가르치면 걔네들이 거기서 졸업을 해서 우리나라에 와도 여기서 문과밖에 다니지 못하지. 이과는 다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수학을 가르치는 걸 정규적으로 자격인증제도를 저는 시행하고자 정부에다 건의하고 있습니다.


/사진=MTN 감성인터뷰 [더 리더] 통일문화연구원 라종억 이사장


- 한국식 수학 교육의 해외전파를 굉장히 강조하고 계신 것 같아요. 조금 더 좀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 예를 들어서 수학이 우리나라 말로 한시 사십오분이다. 그러면 왜 한시 마흔다섯분이라고 안 그러냐고 합니다. 그 다음에 한국어로 구구단을 외우기 쉬운데도 그런 교육은 못 하고 있습니다. 그거는 정부차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세종재단이라고 있는데 거기에서 이거를 언어와 함께 필수과목으로 채택만 해주시면 수학을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눠서 거기서 2등급 이상이 되던가, 3등급을 졸업한 사람에 대해서 유학비자를 줄 수 있는 제도를 하고자 저희가 그렇게 노력을 하고 있는 거죠.

- 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미 이 수학 교육을 시작하신 거죠?

▶ 네. 저희가 사설로 그거는 이제 따로 저희가 사람을 내보내서 따로 수학을 가르치는데, 우즈베키스탄 애들이 얼마 만큼 머리가 좋은지 금방 배워요. 그래서 수학을 꼭 가르쳐야, 이 사람들을 우리나라의 대학에 유학을 보내도 이과를 보내서 유망한 인재를 키울 수 있지 않겠냐. 이렇게 생각이 되는 거죠.

- 결국에는 한 마디로 글로벌 통일 운동을 진행하고 계신 것 같아요. 어떤 내용인지 설명 조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 이제 그,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이나 중국심양에서 저희가 가르치는 애들을 우리나라에 유입해서 좀더 고급 학력자를 유치하자는 거죠, 그니까 지금 막노동자는 나중에 인구가 불어나면 사회 통합에서 큰 문제가 됩니다. 그니까, 좀 고급 인력화를 시켜서 이분들을 더 유용한 인력으로 우리가 흡수하자. 하는 게 제가 통일문화연구원을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자꾸만 노력하게 되는 거죠. 제가 하고 있는 건 중국심양에서 가르치는 한중교류문화원은 우리나라 애들뿐만 아니라, 탈북민 그다음에 화교 애들, 또 심지어 북한 애들에게까지 우리나라 문화를 가르치고 있고 이제 카자흐스탄은 1997년에 제가 그쪽에 명예박사를 받는 기회가 있어서 가다가 보니까, 그쪽에 1937년에 연해주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우슈토베역 이라고 첫 번째 도착역에 17만이 도착했는데, 만 칠천 명이 얼어 죽었어요. 거기 이름 없는 공동묘역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세계에서 최초로 한 일이 많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 일이 많은데 그중에서 하나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인문적으로 이제 문화 전파를 함으로써 통일 운동을 하는 것을 최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최초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그 이름 없는 공동묘역을 고려인들의 추모공원을 설립을 했죠. 근데 이게 다른 나라에다 설립하다 보니까, 없어져 버릴 수가 있으니까 그쪽 나라에서 우호 공원도 카자흐스탄과 함께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설립하면서 카자흐스탄 현직 대통령의 글과 제 글이 그 공원에 같이 실려서 이제는 거의 그대로 존속할 그런 확률이 많은 공원이 됐습니다. 그래서 매년 참배객들이 많이 갑니다.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죠. 그쪽에도 물론 알마티에도 저희가 통일 나눔 아카데미도 설립을 했고요. 지금 KT&G한국어학당과 함께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 이번에는 통일문화연구원의 앞으로 계획과 비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장님, 이 통일문화연구원의 중장기 계획이 있을 것 같은데요?

▶ 네. 통일문화연구원에서 교육을 하다 보니까, 제가 이번에 우즈베키스탄에 기묘국제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 미디어 문화콘텐츠 명예교수를 최초로 받았는데, 거기에 대한 사명감이 뭐냐하면 그 나라에 그 대학 학생수가 4만 5천 명이나 되고, 이사장이 그 나라의 전 교육부 장관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제일 큰 사립대학인데 여기하고 우리가 긴밀한 관계를 맺어서 그쪽에 우리가 언어를 가르치고 그쪽에 IT 과가 굉장히 셉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언어와 문화를 가르친 우즈베키스탄인이나, 우리 고려민들을 그쪽에서 흡수해서 IT 교육을 시켜서 데려오고 이런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이걸 세계화를 시키자는 게 제 꿈입니다. 다음에는 쿠바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수교가 됐지 않습니까? 북한하고만 수교 돼 있던 데를 윤석열 대통령 정부에서 처음으로 수교를 했는데 그곳에도 우리가 통일 나눔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그쪽 관계를 돈독히 하면 아마 통일기반 조성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 우즈베키스탄에 좀 중점적으로 좀 당분간 활동을 하실 계획으로 보여지는데요? 쿠바도 말씀 주셨고 또 이밖에도 또 조금 더 우리 문화를 전파하시기에 생각하고 계신 나라가 있을까요?

▶ 우리나라 전파라는 건 지금은 전단지나 방송을 함으로써 북한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실제는 해상에서 ESP라던가 이런 거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제일 걱정하는 게 이렇게 문화 전파로써 자기네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거를 걱정하고 있는데, 저희는 서둘지 않고 글로벌을 하면서 북한과 우리나라 주위 국가들, 또 세기와의 문화 전파를 함으로써 이게 서서히 그 나라 주민들을 의식을 바꿔놓지 않을까. 그게 바로 통일기반 조성의 지름길이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인데요.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한 이사장님의 비전과 철학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시죠.

▶ 결국, 그, 제가 이제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해불양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불양수라는 건 바닷물은 모든 거를 받아들인다. 근데 거기는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주은래가 1955년에 아프리카 회의할 때 얘기한 얘기인데, 구동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거는 모든 걸 다 받아들이되, 같은 것은 같이 구하고, 다른 점은 정부나 나라나 또는 이웃 간이나 가족 간에도 그대로 남겨둬야 하는 겁니다. 그니까, 대북 관계에 있어서 꼭 적대적으로만 대할 건 아니고 이걸 점차적으로 문화 전파를 함으로써 그들의 의식을 바꾸면서 해불양수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되 예를 들면 일본 같은 경우도 우리가 독도라던가 이런 영토 문제는 그대로 남겨놓고 따로 경제적인 문제라던가 국가 안보 문제는 같이 협력하듯이 북한하고도 그런 면으로 문화라던가 스포츠라던가 이런 거를 통해서 끊임없이 접촉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클로징>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를 통해 한글 교육과 의료지원 사업에 힘쓰고 또 한국 수학 교육 보급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장기적 통일기반 조성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통일문화연구원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틀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평화적 통일과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통일문화연구원의 활약을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출연해주신 라종억 이사장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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