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리커머스 시장이 중요할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 2024.07.09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최근 세계적으로 '리커머스(중고거래), 리퍼(리퍼비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형 유통업계까지도 중고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무신사, 코오롱FnC, 신세계사이먼, 현대백화점, 쿠팡, 11번가, 현대홈쇼핑 등이 앞다퉈 '중고·리퍼' 사업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은 2021년 컨소시움을 형성해 원조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를 인수한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리서치 회사 맥시마이즈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리커머스 시장은 4600억 달러(약637조 원)를 기록했으며, 2030년까지 매년 13.6%의 고도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리커머스(Recommerce)란 '리버스 커머스(Reverse Commerce)'의 줄임말로, 사용했던 물건을 파는 '중고거래'의 새로운 이름이다. 중고거래는 역사가 오래된 비즈니스모델이다. 현재는 농기구, 육아용품, 중고차, 의류와 같은 일상용품부터 명품, 보석, 고가구, 미술품, 공연티켓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국내 중고거래 시장규모는 30조 원을 넘었으며, 2025년에는 43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4조 원에 불과하던 시장규모가 15년만에 8배 성장한 것이다. 이는 디지털 친화적인 MZ 세대가 플랫폼 성장을 견인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기존 중고거래에 AI 등 첨단기술이 접목되면서, 다양한 품목과 복잡한 형태의 거래도 가능해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비주류로 인식되던 중고 거래가 대중화되자 중고 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등 시각 자체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작년에 소비자 5명 중 3명 꼴로 최근 1년 사이 온라인 중고거래 이력이 있었다. 이 중 판매·구매를 모두 경험한 응답자는 31%에 달했다. 판매 사유로는 '불필요한 물품 정리'가 많았다. 구매 사유로는 '저렴한 가격', '신상품 구매 부담' 등이 꼽혔다.

비즈니스를 떠나 리커머스의 중요성은 재화의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 쓰지 않는 중고제품이 어떤 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하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건의 가치와 수명이 한번의 거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N차 거래를 통해 시장에 다시 투입되어 순환되고 그 가치와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너무 쉽게 버려지는 현대 사회에서 중고거래는 경제적 역할에 이어 환경적 역할까지도 수행한다. 리커머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현재 시장을 견인하는 MZ 세대는 과거의 중고거래 시장 참여자들과는 다른 동기로 중고거래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가진 MZ 세대들은 신제품이 아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소유'하기 위해 구매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사용'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소유'보다 '경험'을 원하는 MZ세대들은 제품의 사용기간 역시 기성세대에 비해 월등히 짧다. SNS를 이용한 '플랙스' 문화가 팽배해지면서, 인스타그램 포스팅 하나가 MZ 세대가 사용하는 물건의 수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제 역할을 다 한 물건은 이내 곧 리셀(resell)을 위해 중고거래 시장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중고시장에는 사용되지 않고 바로 시장에 나오는 제품도 많아서, 정상가격의 80~90% 할인된 가격으로 원하는 상품을 얻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

비단 MZ 세대가 아니더라도 급속한 트렌드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제품의 수명, 이른 바 '사용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버려지는 의류나 전자제품이 늘어나면서 환경 오염을 비롯해 지구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2022년 생활폐기물이 1675만 톤으로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 버려지고 있다.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로 자연재난이 잦아지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지속가능성'이란 관점에서도 중고거래가 중요한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나 품질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소비행태와 달리 자신의 신념이나 윤리적 가치에 따라 소비를 결정하는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자신이 중시하는 취미나 여가생활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한편 일상에서는 중고거래를 활용하거나 가성비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등 '합리적 소비'와 '감성적 소비'가 공존하는 '앰비슈머(양면성의 Ambivalent와 소비자의 Consumer의 합성어)'가 늘고 있다는 점도 중고거래 시장의 다면적 복합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글로벌 톱5 디지털 소비자 트렌드 보고서'에서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리커머스 2.0'을 꼽았다. 리커머스 2.0은 중고거래 시장 잠재력에 대한 기업과 브랜드의 인지가 확산되면서 중고거래에 이커머스의 편리함이 도입되고 거래의 대상 지역이나 제품의 카테고리가 확장되는 형태로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말한다.

이미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들도 리커머스 2.0 시대에 걸맞게 기능과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와 동네 상권을 연결하는 하이퍼로컬 기능이나,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새로운 소비문화 조성의 역할도 수행한다. 또 최근 한 플랫폼에서는 일본 중고거래 플랫폼과의 연동으로 하나의 플랫폼안에서 국경 없는 중고거래도 가능케 했다.

국내 대표적인 리커머스 플랫폼인 '번개장터'는 최근 패션 중심 서비스로 개편하면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 1분기 패션 카테고리 유료 결제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검품, 검수 서비스를 추가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중고 패션 카테고리 거래 이용자들의 78%가 MZ세대다. 명품 브랜드들이 주로 거래되는 만큼 젊은 층의 긍정적인 구매경험이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차란'도 인기 브랜드 중고 의류를 위탁받아 수거, 검수, 살균, 판매 등으로 상품화하는 곳이다. 차란의 주 고객도 25~39세로 전체의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재구매율은 60% 수준을 매우 높다. 전자제품 중고거래 '퀵셀'은 제품사진을 앱에 올리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상태를 분석해 판매대금을 즉시 지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물 검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해 편의성을 높인 사례다.

그러나 국내 리커머스 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현재 지적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거래당사자간의 정보비대칭성을 해소하고, 불법이나 사기거래를 방지해야 한다. 현재 구매자는 판매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무조건 믿고 결정해야 한다. 판매자에게 물건을 받기 전에 결제를 먼저 해야 물건을 받는 방식이 일반적인 관행이기 때문이다. 결국 구매자는 불안이나 염려를 안고 거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대와도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와 체계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관련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보증제도들을 만들고 있고, 금융앱에서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관련 정책과 법도 미흡하다. 중고거래의 핵심은 '신뢰'다. 신뢰의 중심에는 합리적인 정책과 미래지향적인 법체계가 필수다.

우리나라는 IMF를 겪으면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운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전 국민이 중고거래를 실천했었다. 미래 먹거리인 리커머스시장에서 글로벌 강자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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