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설경구 "연기 철학? 그게 왜 필요하죠?"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 2024.07.07 10:00
/사진=넷플릭스


어느 한 분야에 30년을 매진한다면 고수, 전문가,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데뷔 32년 차 설경구 역시 '연기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장인이라면 무릇 자신만의 철학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설경구는 '철학이 왜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연출 김용완·극본 박경수)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설경구는 재벌과 결탁한 대통령을 심판하고 정치판을 바꾸고 싶은 국무총리 박동호 역을 맡았다. 작품이 모두 공개된 지난 3일, 설경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작품과 연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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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은 설경구의 첫 드라마 주연작이다. 그 전 드라마가 1994년 아침드라마 '큰 언니'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첫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하다. 첫 드라마에 참여한 설경구는 "쫄았지만 막상 해보니 괜찮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과정이 나쁘지 않았어요. 시작할 때는 쫄기도 했어요. 환경이 완전히 다를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달랐던 부분도 있고 촬영 기간도 길기도 했어요. 특히 두 팀으로 나뉘어 촬영하면 배우는 쉬지도 못한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한 팀으로 움직여서 여유도 있었어요."


주변에게 조언을 구했는지 묻자 오히려 걱정이 돌아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 현장의 차이보다는 박경수 작가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경구는 과거에는 '쪽대본'으로 유명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달라졌다고 전했다.


"다들 걱정만 하더라고요. '그 작가님 쪽대본으로 유명하다'면서 쉽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책이 빨리 나와서 전작을 했던 배우들도 놀라더라고요. 사실 평소에 쓰지 않는 대사다 보니 쪽대본으로 받았으면 기절하고 감당 못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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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돌풍'을 택한 이유도 박경수 작가의 대본 때문이었다.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펀치' 소위 권력3부작으로 유명한 박경수 작가를 알지 못했다는 설경구는 대본에 끌려 작품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그전에는 박경수 작가님을 잘 몰랐어요. 대본을 다섯 권을 받았는데 일상적인 말이 아닌데도 힘이 있더라고요. 저는 대본을 잘 못 읽는 사람인데 한 번에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그 후에 작가님 작품을 보고 호감이 생겼어요."


'돌풍'에도 박경수 작가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대사들이 많다. 정치를 다루다 보니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설경구와 함께한 김희애는 '설경구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는 후문을 전하기도 했다. 설경구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특별히 대사에 집중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대사 하나하나를 살리려고 집중하지는 않았어요.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 중에 하나라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평소에 많이 쓰는 단어도 아니라 일상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농담을 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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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연기한 박동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폭주하는 인물이다. 다만, 박동호의 목표가 과연 정의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판단이 갈린다. 설경구 역시 "박동호는 위험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속 시원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인 부분을 봤을 때는 옳지 않다고 봐요. 최고 권력을 통해 자기 신념을 실천한 건데 '더 큰 악'이라고 상각해요. 작가님이 '위험한 신념'과 '타락한 신념'이 부딪히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에 집중했어요. 저는 정수진도, 박동호도 원하지 않아요. 작품이 끝나고 인물이 남았으니 보시는 분들도 각자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던 박동호는 정수진을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절벽에서 추락한다. 이런 박동호의 최후에 대해 설경구는 "정말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복선을 깔아두긴 해서 죽든지 감옥에 가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마지막까지 정수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모습들은 놀라웠어요. 자기가 말한 건 독하게 지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촬영을 하면서도 박동호가 판타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등장인물 속에서도 판타지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사람들과 섞이되 '현실에 저런 사람은 없어'라고 생각했어 편안했어요."


절벽에서 몸을 던진 박동호의 마지막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설경구는 이런 시각에 선을 그으며 자신은 박동호를 연기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걸 염두에 두라고 했으면 아마 바꿔 달라고 했을 것 같아요. 산을 올라가는 걸음도 못 찍었을 것 같아요. 저는 박동호를 연기했지 누구를 상상했던 건 아니었어요. 안 그랬으면 제가 못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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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이 넘었지만, 설경구에게 연기 철학은 없다. 오히려 왜 연기에 철학이 필요한가를 되묻는다. 대신 매순간순간 오늘을 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연기였다.


"철학으로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작품이 훼손되지 않게 잘하는 거죠 연기는 추상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철학이 필요한가 싶어요. 나에게 주어진 작품을 오늘 열심히 하는 거죠."


그나마 신경쓰는 점이 있다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 지금까지 설경구를 이끌어준 원칙이자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해가 가고 작품을 할수록 선택의 기준이 어려워져요. 다른 직종은 해가 지날수록 보수가 되지만 연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선택의 폭도 적어지고 저를 재료로 쓰기 대문에 다른 연기를 한다고 하지만 겹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괴로움도 있고요."


일각에서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위해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다작의 아이콘' 설경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현장이 직업이고 취미"라는 설경구는 앞으로도 신선함만 있다면 계속해서 작품을 하겠다고 밝혔다.


"속도 조절을 하고 휴식을 하면서 다음 캐릭터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준비가 될까 싶기도 해요. 연구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느끼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재충전이나 다음 캐릭터를 위해 연구한다는 핑계로는 휴식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품이 없어서 쉬는 거면 몰라도요. 안겹치면 그냥 가는 것 같아요. 물론 제 딴에는 안 겹친다고 하는 건데 보는 분들은 겹친다고 할 수도 있지만요."


이런 설경구의 차기작은 디즈니+ '하이퍼 나이프'다. '돌풍과 마찬가지로 OTT 시리즈다. 설경구는 '돌풍' 이후 벽이 깨진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해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벽은 없는 것 같아요. '돌풍'을 하기 전까지는 '대본이 좋으면 해야죠'라고 말했지만 나름의 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차기작을 결정한 걸 보면 나름의 벽이 깨진 것 같고요. 제가 봤을 때 이야기가 좋고 혹시나 안 보인 것 같은 캐릭터라면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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