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새로운 중도주의: 네오포퓰리즘 [PADO]

머니투데이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 2024.07.07 06:00

편집자주 | 한 시대를 특정짓는 것은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 공유하고 있는 특정한 이념 또는 관념입니다. 그걸 '시대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패러다임' 또는 '정치질서political order'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시대의 시대정신은 (특히 미국 기준으로) 물론 '신자유주의'입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고 (대중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트럼프는 그 시대가 종결됐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입니다. 트럼프는 기성 엘리트의 입장에서 매우 이단적인 존재이지만 트럼프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트럼프가 시작했던 반反중국, 보호무역 기조는 뒤집히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됐습니다. 미국의 정치 양극화가 심화됐다고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의회가 초당적인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편입니다. 시대정신이 바뀐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기자 데이비드 레온하트는 2024년 5월 19일자 기사에서 이를 '네오포퓰리즘'으로 정의합니다. 보통 '포퓰리즘'이란 표현에는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따르는 편인데 레온하트는 네오포퓰리즘을 두고 세계화, 자유무역에 염증을 느낀 대중의 불만을 정치권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것은,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에는 이미 그 큰 흐름이 정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그 전반적인 추세 아래에서도 많은 변동이 있을 것이지만 시대정신의 변화를 이해하면 앞으로의 예측은 좀 더 정확해질 것입니다. 미국 정치가 어떤 부분에서 양극화되고 어떤 부분에서 초당적 중도수렴을 이루는지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 대해 가장 많이 논의되는 사안은 미국의 극심한 양극화일 것이다. 공화당은 여러 측면에서 우클릭했고, 민주당은 좌클릭했다. 양당은 서로를 생존의 위협으로 본다.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종종 이러한 양극화의 한 결과로 워싱턴 정가의 교착 상태를 지적한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어야 할 국가에서 지난 4년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 시기는 수십 년 만에 워싱턴 정가가 초당파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의회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함께 모여 긴급대책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동안 의회는 인프라와 반도체 칩에 대한 주요 법안뿐만 아니라 퇴역군인 건강, 총기 폭력, 우편 서비스, 항공 시스템, 동성 결혼, 반아시아 혐오 범죄, 선거 과정에 대한 법안을 초당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무역에 있어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 정책 중 몇몇을 유지했고 심지어 확장하기도 했다.

이 추세는 5월까지도 계속됐다. 먼저 우크라이나와 다른 동맹국들을 지원하는 법안이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됐고 중국 소유주에 의한 틱톡의 강제 매각을 요구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법안 통과 후, 하원의 극우파 공화당 의원들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이를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축출하려 했고 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존슨의 직위를 지키는 데 투표했다. 한 당의 하원 의원들이 다른 당 소속의 의장을 구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5월 초 하원은 재난 구호에 대한 또 다른 초당적 법안을 추진했는데 당파적 투표를 피하기 위해 드문 절차를 사용했다.

이러한 초당파주의의 급증은 놀라울 수 있지만 우연은 아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미국 중도주의의 출현에 따른 것이다.
중도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많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우유부단한 온건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새로운 중도주의가 늘 온건한 건 아니다. 인기 있는 SNS 앱을 강제로 매각하게 만드는 건 심약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프라를 재건하고 자국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들은 야심찬 경제 정책이다.

새로운 중도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냉전 종식 이후 약 25년 동안 워싱턴을 이끌었던 과거의 중도주의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이다. 당시의 중도주의--워싱턴 컨센서스 또는 신자유주의라고도 불렸다--는 시장경제가 승리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무역 장벽을 낮추고 큰 정부의 시대를 끝냄으로써, 미국은 자국민의 번영을 창출하고 세계를 자국의 형상에 맞게 빚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곳에 민주주의를 전파할 것이라 생각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부유층을 제외하고 소득과 부가 느리게 증가했으며 오늘날 미국의 기대수명은 다른 어떤 고소득 국가보다도 낮다. 중국을 비롯해 한때 가난했던 국가들이 더 부유해지긴 했다. 그러나 그들은 덜 자유로워졌고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새로운 중도주의는 이러한 전개에 대한 대응으로, 신자유주의가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바이든의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이 말했듯이, 과거의 방식이 번영을 가져오리라는 생각은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었다. 그 대신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했다. 이를 네오포퓰리즘이라 하자.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자유무역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했다. 5월 14일 바이든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에 대응해 여러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발표했다. 민주당과 일부 공화당원들은 정부가 시장의 단점을 해결하려는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도 지지하게 됐다. 인프라와 반도체 관련 법들이 그 예다. 이러한 정책들은 로널드 레이건이나 빌 클린턴 시절보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과 더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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