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자살한 소년은 아무런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황망했던 엄마 미셸은 아들의 SNS 틱톡 계정을 살폈다. 필사적으로 죽음의 답을 찾고 싶었다. 'For you'라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우울증·절망·죽음에 대한 게 무수히 쏟아졌다.
아들이 죽은 뒤 1년이 흘렀어도, 틱톡 추천엔 여전히 이런 영상이 떠 있었다.
'고통을 없애세요. 죽음은 선물입니다.'
"내 인생은 엿 같아, 너무 비참하고 싫어!"
미셸은 체이스의 형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들이 왜 계정을 그리 어둡고 우울하게 만든 건지.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체이스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그건 '알고리즘'에서 나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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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걸 많이 틀면, 알고리즘도 그리 바뀔 거란 생각━
SNS도 집 같은 '생활 공간'이다. 하루 평균 8시간을 머문다. 여기에서의 좋은 삶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었다. 최중호 LG전자 브랜드플랫폼팀 책임(크리에이티브 총괄 및 컨텐츠 제작 담당)이 말했다.
"저는 아이가 둘 있어요. 일 끝나면 엎어져서 머릴 비우고 SNS를 쓱 보죠. 그때마다 아이들이 와요. 그런데 (화면을) 보여주기 싫더라고요. 아이들이 보기에 이상한 영상은 아니지만, 그리 좋을 것 같진 않은 거죠. 아이들에게 오지 말라 하던지, 제가 SNS를 껐었어요."
자식과 함께 볼 만큼 좋은 영상들이 많이 떴다면 어땠을까. 그래볼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디지털 공간에서의 '좋은 삶(Life's good)'에 대해 정말 몰두했어요. 고민하고, 검색하고. 그러다 보니 제 SNS에 추천되는 콘텐츠들이 좀 달라지는 거예요. 사용 이력에 따라 바뀐 거지요. 그럼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정말 될까. 검증을 위해 전문가들과 테스트를 거쳤다. 예컨대, 30여 명의 SNS 계정을 새로 만들어 자체적으로 정한 플레이리스트 영상들을 돌렸다. 각기 두세 번씩 보게 했다. 가능했다. 실질적으로 바뀌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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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볼만한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자━
그러니 잘해봐야 중간일 거라고 여겼다. 차라리 기업들이 해왔던 것처럼 SNS를 마케팅 창구로 쓰는 게 더 편했을 거였다.
"자, 스스로 바꿔보세요. 이건 너무 방관자적인 입장이잖아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좋은 영상을) 어디서 찾지? 좋은 건 뭐지? 그걸 찾으려면 무슨 키워드를 넣어야 하지? 몇 개를 봐야 하지? 결국 중요한 건 재미였습니다. 즐거워하면서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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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되게 중요한 것 같아, 괜찮다"━
협업하는 이들이 많으니 소통 과정도 만만찮았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기쁨이 있었다고. 최중호 책임이 말했다.
"국적 상관없이 에이전시, 감독, PD, 인플루언서, 촬영장 스태프까지 '야, 이거 되게 중요한 것 같다. 너무 괜찮다' 이런 얘길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누구 하나도 '이런 걸 왜 해?'란 반응이 없었어요. 100% 공감하는 거예요. 그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추진할 수 있었지요."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들에게 바라던 것도 그런 진정성이었다고. 단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이게 미래 세대를 위해 정말 필요하구나, 그리 느꼈을 때 영상도 좋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걸 처음부터 재생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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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LG야?" 의아해도 취지 믿어주었다━
LG브랜드플랫폼팀이 알고리즘에 대해 고찰해보자며 만든, 좋은 영상 플레이리스트 29개. 기존 문법과는 좀 다르게, 짧고 느슨하고 유쾌하고 즐거우며 퍼가기 좋은 형태로 돼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거기에 'LG'라는 브랜드가 대놓고 명시돼 있지 않았기에, 내부에서 공감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이혜영 LG전자 글로벌 PR팀장이 말했다.
최중호 책임도 말했다.
"이번에 이걸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되게 감사하면서 내부에 대한 '담대함'을 느낀 게 있었어요. 선배들의 입장에선 '이게(이 영상들이) 왜 LG야? 이런 생각이 있었을 지도 모르잖아요. 100% 공감을 못하시더라도 '정말 좋은 거야? 그래, 그럼 해보자'라고 결정해주셨어요. 진정성 있는 액션에 힘을 실어주신단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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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볼까' 생각하게 하는 게…더 크고 중요한 의미━
"미국은 (SNS에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여과 없이 보여지는 게 문제였다면, 우리나라는 좋은 데 가서 오마카세 먹고, 명품 사고, 해외여행 다니는. 이를 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이 사회적 맥락이에요."
오인선 책임이 이어 덧붙였다.
"SNS에서 보고 충격 받은 표현 중 하나가 '낳음 당했다' 이거든요.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다. 다른 사람들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은 SNS에서 '나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란 느낌에서 오는 표현도 되게 클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나라의 플레이리스트는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어요."
"추천 콘텐츠를 바꾸는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될 것 같진 않아요. 저희가 제공하는 건 일종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죠.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알려, 인식하게 만드는 거지요."
최중호 책임도 이리 말했다. "알고리즘을 좋게 바꿔볼까 하는 결정 자체도 용감한 선택이에요. 플레이리스트가 없더라도, 또 다시 안 좋은 콘텐츠가 추천되고 돌아가더라도, '맞아, 나 이런 선택할 수 있지'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더 큰 의미이지요."
"저희 영상 밑에 댓글이 달렸어요. 근데 단순히 좋다,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녔어요. '난 지금 내 알고리즘이 좋은데' 혹은 'LG 알고리즘 되게 좋은데' 식으로 썰전이 있죠. 그런 식으로 토론할 기회를 저희가 만들었단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황소윤 책임이 '희망'을 봤다고 한 장면은 이런 거였다. 한 유튜브 채널과 실험을 했단다. 알고리즘을 정화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였다. 불과 1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좋다고 생각하는 영상들을 쭉 연달아 봤다.
그리고 다시 알고리즘을 보았을 때, 10개 중에 무려 2~3개 정도의 추천 영상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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