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사의 충실 의무

머니투데이 박재범 경제부장 | 2024.07.03 04:25
# 이사의 의무는 2가지로 정리된다. 성실·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성의무(duty of loyalty)다.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선관주의의무)는 쉬운 말로 '최선을 다할 의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신의 정보를 갖고 최선을 다해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이사회에 참석해 내용도 모른 채 찬반을 표하면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다. 게으르면 안 된다. 태만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충성의무(충실의무라 불리기도 하는데 맥락상 '충성' 의미가 더 다가온다)는 배신하지 않을 의무, 이해충돌 회피 의무다. 위임해 준 이의 이익만 생각하고 '충성'하면 된다.

이사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위임해 준 이가 아닌 다른 이의 이익을 우선하면 충성 의무 위반이다. 이해상충을 막기 위한 장치다.

#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규정한 상법 제382조3항이다.

충실 의무는 '선관주의의무+충성 의무'의 의미로 담았겠지만 '충실=성실'로 이해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선관주의 의무만 존재할 뿐 '회사를 위하여 충성하라'는 의무는 선언적 규정으로 받아들인다.

때론 '회사를 위하여'를 '경영진을 위하여' '대주주를 위하여' 등으로 곡해한다. 최근 불거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 논란이 그렇다.

상법상 '회사를 위하여'를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로 상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다.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주주'로 넓어진다.

주주권 보호가 주된 이유다. 21대 국회 때 야당이 주장했던 이슈인데 최근엔 정부 목소리가 더 강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중량감있는 고위 인사가 선제적·공개적으로 발언하니 재계는 화들짝 놀랐다.

#정부가 상법 개정 이슈를 건드린 시점을 보면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때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 정부의 의지를 묻는 와중에 꼭 집어 '이사 충실 의무'를 언급했다고 한다.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갖고 있을 것이라던 막연한 생각과 온도차가 컸다. 당장 법 개정을 하진 않더라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 메시지가 나왔다고 한다.

주주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요구, 외국 투자자의 강한 목소리, 밸류업을 향한 정부의 의지 등이 모여 '상법 개정'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 그 상법 조항으로 돌아가보자. 충성 의무의 핵심은 이해 충돌 방지다. 위임해 준 이 외에 충성하면 안 된다. 위임해 준 이는 회사다. 대주주도, 소액 주주도 아니다. 노동조합도 아니다. 이사는 회사 대리인으로 회사에 충성하라는 게 법 조항이다.

'회사를 위해 충성'의 본질은 회사 가치만 보고 의사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회사 이익에 반하면 그 자체로 충성의무 위반이다.

상법에 넣고 싶은 문구 '주주를 위하여'는 결국 '소액주주를 위하여'다. 대주주는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니까 말이다. 소액주주는 '단기' 보유, 즉각 보상 등을 원한다. 장기적 경영을 저해한다. 미국 판례를 보면 '이사는 회사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 가치 극대화를 요구'해야 하는데 소액주주를 위하면 회사 이익과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대주주도 포함한 주주라면 대주주 전횡을 뒷받침해주는 조항이 된다. 주주를 비례적으로 위하라는 것이라 해도 결국 대주주를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이 충돌할 때 전자를 택하라고 만든 의무 규정에 '회사와 주주'라는 이해 상충을 두겠다니. 명분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숱한 왜곡을 낳을 뿐이다.

주주 보호는 충성 대상이 아니라 회사에 충성한 결과로 이뤄진다. '회사=대주주'라고 인식돼온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한다면서 상법 개정으로 비약하는 것은 넌센스다.

시급한 것은 대상 확대가 아니라 '회사를 위하여'라는 충성 의무의 본질을 명확히 하는 거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지배구조 개선의 과정이다. 헛심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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