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좋아하는 정부 탓해라" 의정갈등에 깨지는 의사·환자 '라포'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 2024.07.01 15:53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1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 환자 옆을 지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8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집단 휴진에 나서겠다는 등 총파업을 예고했다. 2024.06.10. scchoo@newsis.com /사진=추상철

의정 갈등이 4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정부를 향한 의사들의 분노가 애꿎은 환자를 향한다. 의사들은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는다며 반복적인 휴진에 나서거나 의도적으로 의료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환자도 더는 의사들의 행태를 참지 못하겠다며 대규모 집회 등 맞불을 놓으며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의사·환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경우 장기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과 환자 치료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현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교수들로 구성된 고려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고대의료원 비대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오는 12일을 기점으로 '무기한 자율적 휴진'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주요 대학병원 중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는 건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고려대의료원이 세 번째다.

고려대의료원 비대위는 "현 의료사태로 인한 의료인들의 누적된 과로를 피하고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 휴진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입장문에는 "전공의 요구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전공의와 대화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사실상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실질적인 이유로 거론했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 집회에서 의료진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4.06.17. kgb@newsis.com /사진=김금보

앞서 무기한 휴진을 선언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교수들도 병원을 떠나는 원인이 정부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전공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집단행동의 '명분'이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 환자를 볼모로 한 휴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의정 갈등의 불씨가 환자에게로 번지면서 의사와 환자 간 라포(친밀감)에도 점차 금이 가고 있다. 의사 커뮤니티에는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거론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수준으로 의료 서비스를 맞추잔 주장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진료를 보거나 수술받기까지 수개월을 기다리는 것이 'OECD 평균'이라며 의료공백에 따른 진료 지연과 거부를 합리화한다. 의료공백에 대한 환자 피해를 두고" 전세기를 띄워서라도 치료하겠다"는 과거 박민수 제2차관이 발언을 꺼내 "전세기 어디 갔냐"며 조롱하는 의사도 더러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법조계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심이 환자에게 투영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파킨슨병 환자에게 금기인 구토약 맥패란을 주사 투여한 의사가 금고형을 받자 방어 진료 경향이 한층 강해졌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자신의 SNS에 "앞으로 병·의원에 오는 모든 구토 환자에 어떤 약도 쓰지 말라. 당신이 교도소에 갈 만큼 위험을 무릅쓸 중요한 환자는 없다"며 기름을 부었다. 실제 일부 보건소 등이 이 약의 처방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공지하는 등 동요하는 의사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환자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병원·서울의대 교수 비대위가 발표한 무기한 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췌장암 판정을 받은 암환자가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4.6.1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지금까지 인내했던 환자들도 휴진 등 의사 집단행동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의·환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성명서와 논평을 통해 '집단휴진 반대'를 여러 차례 공언한 환자단체들은 오는 4일 서울 종로구에서 1000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장외 집회를 전개한다. 이번 집회에는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13개 지부), 한국환자단체연합회(9개 단체),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80개 단체) 등 총 92개 환자단체가 참여할 예정이다. 병을 앓는 환자와 이들의 보호자가 이 정도로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의사·정부 간 갈등이 의사·환자로 옮겨붙지만 정작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의료대란을 촉발한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계 비상상황 국회 청문회'에서도 미흡한 환자 안전 대책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료공백 사태를 두고 "4개월 넘도록 지속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뚜렷한 출구전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청문회에서 "의료계는 정부 정책 반대에 환자 피해와 불안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는 의대 증원도 중요한 정책이지만 환자 피해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제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의·정 양쪽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암 등 목숨이 오가는 환자는 전문적인 치료 행위와 의료 조언을 전혀 받지 못하는데 대해 반감과 불만이 상상을 초월한다"며 환자들의 심경을 전했다. 이어 "이 사태가 봉합 돼도 의사와 환자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점차 불어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공의와 직접 대화하던지 실효성있는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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