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눈치 보는 환자, 눈길도 안 주는 의사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 2024.06.28 05:40

편집자주 |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즉석 카레가 뚝딱 만들어지는 3분.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선 즉석 카레가 완성될 때 진료가 끝난다는 '웃픈' 소리가 떠돈다. 이른바 '3분 진료'인데, 그만큼 국내 병·의원의 평균 진료 시간이 매우 짧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진료 시간에 적잖은 환자들이 의사의 눈치를 본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입법청문회'에선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피해사례 신고 건수가 예상보다 적었다는 지적과 함께 '환자들이 주치의의 눈치를 보느라 진료 피해에 대해 신고조차 하지 못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진료 시간에 환자를 쳐다보지도 않는 건 비일비재하고, 환자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는 의사도 있다는 볼멘소리가 취재 도중 들려왔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진료를 끝내야 해 의사와 환자 간 라포(친밀감)를 형성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구조적 문제도 있다. 국내 의료환경에선 박리다매식으로 환자를 최대한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의사들은 환자를 '빨리빨리' 진료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낮은 수가'를 지목한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의원급 외래 초진 진찰료(2020년 기준)는 우리나라가 1만6410원인데, 미국은 13만2001원, 캐나다는 7만4683원, 프랑스는 3만3183원, 일본은 3만2069원, 호주는 3만125원이다.

의사들도 '3분 진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 방법으로 수가 인상을 요구한다. 지난달 28일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이사는 "국민들이 바라는 진료는 3분 진료가 아니다"라면서 "의사들도 국민이 원하는 진료를 하고 싶지만, 진찰료가 주요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가로는 병원을 운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의협은 약 25% 수가 인상이 필요하고, 이를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한다 해도 매년 11.8%의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원하는 만큼 수가가 올리고, 1인당 진료 시간이 길어진다면 과연 의사와 환자 간의 '라포'(친밀감)를 형성하는 데 도움 될까?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환자들은 현 수가 체제에서 '3분 진료'를 받더라도 '3분 동안만이라도' 의사와 아이컨택하며 의사로부터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서다.


지난 4월 수원의 한 병원에서 초진 환자 400명에게 설문을 시행했더니 '진료 서비스에 만족했다'고 답한 환자의 41%가 그 이유로 '친절함과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꼽았다. 특히 40대 이상에서는 '자세한 설명이나 경청' 등 의료진의 태도에 중점을 뒀다. 현 수가 체제 안에서도 의사가 '단 3분 동안' 친절하게만 설명해준다면 의사에 대한 신뢰는 얼마든지 쌓을 수 있단 얘기다.

서울대병원의 무기한 휴진 유예로 사그라들 것 같던 빅5의 '무기한 휴진' 불씨가 세브란스병원에서 27일 다시 타올랐다. 교수들은 수술을 앞둔 환자를, '3분 진료'를 위해 머나먼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를 결국 버렸다. '무기한' 환자들을 떠난 현 행태는 어쩌면 '3분 진료'에서 일부 의사들의 '안하무인(眼下無人)' 태도의 연장선이 아닐까.
정심교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의료헬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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