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경험의 부재를 겪는다. 은평구의 자립준비청년청(이하 자준청)과 자립준비주택은 양육·위탁시설을 떠나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그 현장에 기자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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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간…적성에 맞는 직업 찾기━
검사가 끝난 후 자립준비청년들은 △봉사형 △생명형 △소통형 △복합형 △창조형 등 개인의 성향과 역량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전달받았다. 이 성향을 바탕으로 1:1 진로 컨설팅과 모의 면접이 진행됐다.
“김재영(가명, 25세) 씨는 창조형이 나왔어요. 결괏값을 생각해보며 본인의 장점을 적어보세요.”
“저는 별로 창의적이지도 않은 것 같고, 아이디어도 별로 없는데…이 장점이 맞을까요?”
“자신의 성향이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만나보지 못한 거예요.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적어보죠.”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립준비청년들은 자신의 장점이나 성향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자준청의 오하나 사회복지사는 “자립준비청년은 양육자들도 바뀌고 만나는 사람들도 제한적이어서 직·간접적 경험이 부족하다”며 “자연스럽게 자기탐색 시간이나 타인과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 적다”고 설명했다.
1시간 가까이 진로 컨설팅과 모의 면접을 마친 재영 씨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평소엔 생각해보지 못했던 직업들을 알게 됐고 그중에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앞으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내 장단점은 뭔지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증 공부도 하고 직업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장소연(가명, 22세) 씨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던 차에 길을 찾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무직, 요식업 등에서 일하다 새로운 직무를 탐색 중이라는 그는 상담 후 노인복지 분야로 진을 정했다고 했다. 소연 씨는 검사 결과 주 성향으로 봉사형, 소통형, 제작형이 나왔다며 노인복지에서 경력을 쌓은 후 이와 관련한 제품을 제작하겠다는 꿈을 그렸다.
진로탐색을 마친 청년들은 관내 기업을 탐방한 후 일 경험활동에 나선다. 사회복지관, 청소년도서관, 카페, 법무법인, 구청 등에서 사무행정직, 서비스직, 사회복지직 등을 경험할 예정이다. 한 달 최대 50시간씩 3개월간 근무하며 일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오 사회복지사는 일 경험사업 진행 이유에 대해 “일반 가정과 비교했을 때 자립준비청년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진로 준비 기간이 짧다”며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진로를 탐색한 후 일 체험까지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응축된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자립준비청년은 자신과 맞는 직장을 찾기보단 ‘생계’에 맞는 직업을 고를 수밖에 없다. 오 사회복지사는 “현재는 법이 개정돼 만 24세까지 시설에 있을 수 있지만 이전에는 만 19세에 퇴소해야 했다”며 “당장 생계가 중요하기에 꿈을 찾는다기보단 술집이나 음식점 등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직업군으로의 전환’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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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자립준비청년청…개인별, 사례별 맞춤 지원━
은평구가 자립준비청년 정책을 선제적으로 펼친 것은 구내 자립준비청년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 주무관은 “서울시 자치구 중 우리 구에 아동복지시설이 제일 많고 자립청년의 수도 제일 많았다”고 말했다.
5월 기준 은평구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은 175명이며, 보호연장아동도 60명이다. 보호연장아동이란 성인이 된 이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시설에 머물며 보호 기간을 연장한 청년이다. 만 24세까지 보호 연장이 가능하다. 이 중 7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자준청에 등록했다.
자준청은 개인별 맞춤 지원을 지향한다. 자립준비청년이 자준청에 등록하면 1년간의 계획을 함께 세우고 그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오 사회복지사는 “자준청을 찾는 자립준비청년은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고 사례도 다양하기 때문에 인생 포트폴리오를 함께 세우고 관련 자원을 연계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에겐 관련 기관이나 일자리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년에겐 상담을 지원한다.
자준청을 찾은 이세나(가명, 22세) 씨는 “법적으로 도움받을 일이 생겨 올해 초부터 자준청을 방문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맞아주고 대화도 해줘 좋았다”며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반기에는 자립준비청년들과 지역사회의 어른을 매칭하는 멘토링 사업도 운영했다. 오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일이나 고민이 생겼을 때 의견을 구할 수 있는 버팀목,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밖에도 주거 마련에 필요한 주택보증금 및 임대료, 재정멘토링 활동 등을 지원하는 점프스테이지(Jump Stage)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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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퇴소 전 홀로 살아보는 경험을”…은평형 자립준비주택━
보호연장아동은 자립준비주택에서 3개월간 독립을 체험해본다. 실생활에 필요한 집기 구매, 공공요금 납부, 쓰레기 분리배출 등 시설에서는 해볼 수 없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
자립준비주택에서 3개월째 생활 중인 보호연장아동 최영석(가명, 21세) 씨는 “가격을 생각하며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정해진 요일에 분리배출을 하는 등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았다”며 “시설에서는 언제나 북적였는데 여기 살면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볼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자립준비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최소희(가명, 19세) 씨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독립을 하면 어떤 집을 골라야 하는지 기준이 생겼다고도 했다. 두 청년은 자립준비주택이 “시설에서 퇴소하기 전 심리적으로 보호받으면서 자립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용 기간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독립을 경험해보기에 3개월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김 주무관은 “기간 연장을 더 해주고 싶지만 자립준비주택이 4개소밖에 되지 않아 대기자가 많다. 더 많은 청년이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가 2021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며 보호 종료 기간이 만 18세에서 24세로 연장됐지만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세상은 낯설기만 하다. 올바른 경제관이 정립되지 못해 사기를 당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회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 고립은둔청년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자준청, 자립준비주택과 같은 자립준비청년의 버팀목이 필요한 이유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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