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준위 방폐물 지하연구시설에서는 무엇을 하나?

머니투데이 김경수 (재)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 단장 | 2024.06.28 05:03
김경수 (재)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을 운영하기에 앞서 올 8월부터 시운전에 돌입한다. 1983년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원칙을 결정하면서 그로부터 40년 이후에 처분을 시작한다고 세운 목표를 차질 없이 이룬 쾌거이다. 뒤를 이어 스웨덴, 프랑스가 반환점을 돌았고 캐나다, 스위스도 부지 확정이 가시권에 들었다.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부지를 정하기까지는, 이 시설의 필요성과 수용성이 워낙 첨예하게 맞부딪혀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난 반세기에 걸친 지난한 신뢰도 형성 과정에서 방폐장의 초장기적 안전성에 대한 이해도를 끌어 올린 결정적 요인은 '체감을 통한 소통 활동'이었다. 각국 전문가들은 땅속 500m 깊이에 연구실을 지어 처분기술을 개발하면서 대중에게도 연구 현장을 개방해 실제 처분장의 형태와 왜 안전한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오늘날까지 10여 개 국가가 처분장이 아닌 곳에 별도의 지하연구시설을 보유·운영하고 있다. 이 시설의 주요 기능은 첫째, 실제 고준위 방폐물을 묻을 때와 비슷한 조건에서 안전한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모든 결과물은 규제 기준에 따라 기초연구 단계의 종합적인 안전성 입증자료로 제시하게 된다. 둘째는 부지특성 평가기술, 처분장 설계·건설·운영기술 등을 미리 적용해 보고 부족기술을 메꿔나가는 것이다. 셋째는 처분장 운영과 폐쇄 이후의 안전 관리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며 특별히 처분장의 안전성과 관련해 대중과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능이다.

이러한 소통 기능의 중요성은 미국 연방정부의 방사성폐기물기술검토위원회(NWTRB)가 지하연구시설을 구축할 것을 의회와 소관 부처에 권고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연구시설에는 많은 해에 1만2000명 이상이 방문해 활발한 소통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두 곳의 지하연구시설 방문객들의 고준위 방폐장의 필요성과 안전성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시설 견학 후에 13~20% 더 향상돼 수용성 증진에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특별법안에는 부지 선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이 두 차례에 걸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부지 선정 절차에 앞서 시설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하면 주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수용성 증진에는 직접 체험이 가장 효과적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평생 땅속 깊이까지 들어가 볼 기회가 드물다. 아주 견고한 지하 암반 속에서 '이런 치밀하고 강한 암반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겠는가?'를 직접 체감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동으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구축사업의 첫 단추로 부지를 공모하고 있다. 이 대형 연구시설은 원자력시설이 아니어서 법적으로 사용후핵연료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시설 유치지역에서는 현지 주민의 고용 창출 및 전국의 수많은 방문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나아가 지역 이미지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연구시설은 원자력계 최장기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고 과학기술과 국민이 소통하는 대표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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