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전문법원의 설치와 법관의 전문화

머니투데이 권혁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도시정비팀·블록체인팀) | 2024.06.28 02:03
권 혁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도시정비팀, 블록체인팀)
얼마 전 대통령이 노동법원을 전문법원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엔 현재 지방법원, 고등법원 등 일반법원과 별도로 지식재산권을 다루는 특허법원, 가사사건을 다루는 가정법원, 행정사건을 다루는 행정법원, 파산·회생사건을 다루는 회생법원이 설치돼 있다.

독일은 노동법원과 재정법원(조세사건 전담) 등을 별도로 뒀는데 우리 역시 독일처럼 노동사건이 가지는 특수성과 사회적 여파 등을 고려해 노동법원을 별도 전문법원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논의는 상당히 오래 계속되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조세사건을 행정법원에서 다루는데 조세법원의 별도 설치 역시 조세사건을 다뤄본 변호사들은 그 필요성에 공감한다. 필자 역시 예전에 조세사건을 수행하면서 원고와 피고 대리인들과 재판부 모두 무슨 말인지 서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재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노동사건이나 조세사건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분쟁의 해결을 위해 상당히 필요한 요소라 생각하며 전문법원의 설치논의도 신속히 진척되기를 바란다.

전문법원 설치와 더불어 법관의 전문화도 고려돼야 한다. 우리 법원의 인사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추구했다. 법관들은 순환보직을 통해 민사, 형사, 행정, 가사, 회생, 특허 등 다양한 법원에 근무할 기회를 갖는다. 제너럴리스트의 장점은 다양한 사건을 접하고 법리를 적용할 수 있으므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잭 오브 올 트레이즈 이즈 마스터 오브 논'(jack of all trades is master of none·두루 잘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이라는 말과 같이 어느 한 분야에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쌓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고 법관 스스로도 오랜 법관 생활을 하고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하면서 분쟁의 양상 역시 종전에 흔히 접할 수 있던 것부터 새로운 영역들로 확대되고 새로운 영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상당한 기간 숙련되고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면 그 배경이나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을 전담해서 10년 이상 법관 생활을 하고 나서 조세사건을 맡으라고 하면 어떻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회계학도 접해보지 않고 생소한 세법의 용어들조차 이해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조세사건 전문 변호사들 말에 따르면 조세법의 전체 내용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계지식, 다양한 조세체계 등을 습득해야 하므로 10년 이상 돼야 한다는데 이를 전혀 접해 보지 못한 판사가 어떻게 갑자기 조세사건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특허법원과 회생법원은 또 어떤가.


지금까지 우리 법원이 어느 정도 신뢰를 받고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법관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다. 필자 주변의 많은 법관은 사건들을 처리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업무 외에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수백 건의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주말이나 야간에 대학원에 따로 등록해 세법이나 노동법을 수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왔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더 이상 그러한 열정만으로는 사법시스템의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인 사법부가 그러한 과로와 과부하를 당연시하는 것이 상식에 맞지도 않다.

전문법원이 설치되지 않더라도 각급 법원에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고 전문분야에 상당기간 근무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전문성 도모는 가능하다. 노동사건이나 조세사건뿐 아니라 전문영역에서 오랜기간 숙련된 법관은 사건처리에서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법정에서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소통 역시 훨씬 용이하다.

전문법원 설치나 법관의 전문화가 보다 사법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권혁 변호사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도시정비팀·블록체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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