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피아비의 나라'에서 온 100명 모였다…"한국에 온 것은 행운"

머니투데이 의정부(경기)=김미루 기자 | 2024.06.27 06:30

[창간기획] '웰컴인!' 대한민국

편집자주 | 이르면 올해 우리나라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가 된다. 다문화 인구, 장기 체류 외국인 등 이주배경 인구의 비중이 5%를 넘어서면서다. 합계출산율 0.7명으로 인구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국가소멸로의 질주를 멈출 방법은 사실상 이민을 늘리는 것뿐이다. 이주민 또는 다문화 시민들과 함께 화합과 번영을 이룰 방법을 찾아본다.

지난 22일 밤 경기 의정부시 한 식당에서 스롱 피아비 선수(34)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 이곳에 국내 캄보디아인 100여명이 자리했다. /사진=김미루 기자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은 우리의 행운입니다. 도움이 된다면 나는 언제든 여러분에게 오겠습니다."

지난 22일 밤 경기 의정부시 한 식당에서 '당구 스타' 스롱 피아비(34)가 나타났다. '캄보디아 공동체' 15주년을 맞아 국내 캄보디아인 100여명이 자리한 모임이었다. 공장 노동자부터 미용실 사장,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직원까지 전국에서 모인 이들은 생선 젓갈 '쁘로혹'과 고기 볶음 '록락' 같은 캄보디아 전통음식이 놓인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피아비 선수는 2010년 한국인과 결혼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결혼 이듬해 우연히 남편 따라 간 동네 당구장에서 재능을 발견해 아시아 스리쿠션 챔피언이 됐다. 국내 여자프로당구 LPBA 사상 최초로 통산 7번 우승했다. 누적 상금은 2억6277만원으로 2위에 올라 있다. 캄보디아에선 국민 영웅이다.


피아비 선수 등장에 '즉석 팬미팅' 열려


피아비 선수가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손에 든 것은 캄보디아 화폐. /사진=김미루 기자
피아비 선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즉석 팬미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두명이 휴대전화로 피아비 선수의 사진을 찍어갔다. 피아비 선수가 손짓하니 그의 옆자리에 앉아 '셀카'를 찍었다. 긴장한 나머지 휴대전화를 든 팬의 손이 떨렸다.

팬은 잔뜩 긴장했는데 피아비 선수는 흥이 났다. 한국살이 15년차지만 그도 이같은 행사 참석은 처음이었다. 프로 선수 데뷔 전에는 하루 10시간 당구 연습에 매진했다. 실력이 줄어들까 무서운 마음에 하루 20시간도 당구장에 있었다. 선수로 이름을 알린 뒤에는 1달에 개인 시합과 팀 시합으로 총 2번 있는 대회에 참가하느라 시간을 못 냈다고 한다.

그는 자기 팬을 취재진에게 꼭 자랑하고 싶다는 듯 "이 언니는 내일 다문화 행사 노래자랑 가서 한국어 노래 부르고요. 여기 오빠는 모델이고 저 오빠는 가수예요"라며 "다들 멀리서 살아서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페이스북에서 다 본 얼굴들이에요"라고 소개했다.

또 다른 팬이 수첩을 들고 와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성공 부적"이라며 캄보디아 지폐에도 사인을 부탁했다. 피아비 선수는 하트가 들어간 사인을 한 뒤 그 아래 한글로 '피아비'를 적었다. 피아비 선수와 악수를 한 팬은 폴짝폴짝 뛰며 선수에게서 눈을 못 뗐다.

피아비 선수가 팬이 건넨 캄보디아 화폐에 '피아비'라고 적고 사인하고 있다. /사진=김미루 기자


국내 캄보디아인 5만명↑…"피아비, 우리에겐 감동"


피아비 선수가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했다. /사진=김미루 기자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다들 스롱 피아비를 알고 있냐"고 묻자 자리에 앉은 이들이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인사말을 부탁받은 그는 무대에 서서 캄보디아어로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라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나에게 연락해달라. 몸 건강하게, 특히 마음 건강하게 지내달라"고 말했다.

피아비 선수가 소개한 '언니'는 한국에 온 지 17년 된 상파롱씨(38)다. 국내 캄보디아인에게 화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상파롱씨는 당구 선수 피아비의 등장 이전과 이후 교민들 사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 그는 "정작 고국에 있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쓸 수 없으니 피아비를 잘 모른다"면서도 "한국에 오면 이런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감동하고는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한 캄보디아 노동자가 "피아비가 유명해지고 나서 한국인 사장님이 '피아비의 나라'에서 왔다며 더 잘해준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내 등록된 캄보디아인은 5만3904명이다. 베트남, 중국, 네팔, 우즈베키스탄 다음 5위로 많다. 절반 이상이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체류하며 농장, 공장, 식당 등에서 일한다.

5년 전 한국에 와 경기 양주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솝피아씨(36)는 "엄청나게 자랑스럽다. 일이 덥고 힘들어도 힘이 난다"며 "피아비가 경기 하는 모습을 보며 매일 감동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밤 경기 의정부시 한 식당에서 '캄보디아 공동체' 15주년을 맞아 행사가 열렸다. 국내 캄보디아인 100여명이 자리했다. /사진=김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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