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폭염…1300명 사망 메카 순례길 참사, 이유는?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24.06.24 16:45

사우디 공식 순례 허가 취득하려면 최소 5000달러…통화가치 폭락한 이집트서 사망자 절반 발생

15일(현지시간) 이슬람 제일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동쪽에 위치한 아라파트 산에서 무슬림 순례자들이 양산을 쓴 채 순례길을 걷고 있다./AFPBBNews=뉴스1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한 이슬람 성지순례 행사 '하지'(Hajj)에서 올해 13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높은 성지순례 비용으로 인해 고질병이 된 '순례 암시장' 문제에 50도가 넘는 이상기후, 이집트 통화가치 폭락이 겹쳐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값비싼 순례길, 암시장서 사기 당하는 순례자들


23일(현지시간) 사우디매체 아랍뉴스, 뉴욕타임스(NYT) 등 보도에 따르면 파드 알잘라젤 사우디 복지부 장관은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올해 하지 기간 순례자 130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5년 하지 기간 메카 인근 미나에서 2000명 넘게 압사한 이후 최악 참사다. 사우디는 사망자 중 83%는 공식 성지순례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공식 허가를 받은 순례자들에게 냉방시설이 비치된 숙소와 이동수단,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NYT 취재에 따르면 허가 비용은 순례자 국적에 따라 5000~1만 달러(690만~1380만원)이다. 이에 대해 사우디 측은 안전한 순례를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하지 참가자는 180만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안전을 내세웠지만 허가를 위한 비용은 일반 순례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비용 감당이 힘든 순례자들은 암시장으로 향한다고 한다. 사우디는 하지 시작 몇 주 전 미허가 순례자를 차단하기 위한 봉쇄 조치에 들어가는데, 이보다 빠르게 사우디에 입국한 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브로커를 거쳐 순례길에 오른다는 것. NYT가 취재한 순례자들은 이 경로를 통해 2000~3000달러를 내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불법 순례길에 오른 이들은 안전 장치 부실로 사기 피해자로 전락하기 쉽다. 아무런 의료 조치 없이 사막을 가로질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NYT 취재에 응한 한 55세 이집트 남성은 여동생이 현지 여행사를 통해 불법으로 순례길에 올랐다면서 "여행사가 버스 제공을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땡볕을 직접 걸어야 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사망 소식을 듣고) 여행사에 항의하려고 전화를 걸어보니 전화기를 꺼놨더라"고 말했다.



사망자 절반이 이집트…이유는 '통화 폭락'


같은 날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당국은 하지 순례길에 오른 자국민 672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가 발표한 사망자 수의 절반이 넘는다.


유독 이집트 사망자가 많은 것은 이집트 통화가치 폭락 문제와 무관치 않다. 2011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던 이집트는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심각한 외화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기존 고시환율제를 포기하고 환율 결정을 시장에 맡긴다는 조건을 걸고 IMF에 추가 자금을 신청했다.

지난 3월 이집트중앙은행(ECB)에서 환율 정책 변경을 공식 발표하자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했다. 하지를 위해 이집트 순례객들이 모은 계좌잔고 가치도 함께 폭락했다. 사우디 리얄화 대비 이집트 파운드 가치는 8.2파운드 수준이었다가 환율정책 변경을 발표한 3월6일 기준 13.1파운드까지 떨어졌다. 부모가 브로커를 통해 불법 순례를 떠났다는 한 이집트 여성은 NYT 인터뷰에서 "(부모가) 이집트 통화가치 하락으로 매년 저축계좌 잔고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빨리 떠나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청년도 힘든 순례길, 기후변화 폭염으로 더 힘들어져


20일(현지시간) 터키 국적 무슬림이 하지 순례길에서 냉수를 얼굴에 뿌리고 있다./AFPBBNews=뉴스1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신체 건강한 무슬림들은 평생 한 번 제일 성지인 메카로 순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메카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일종의 복처럼 여겨진다. 이렇다 보니 노년에 접어들어 순례길에 오르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한다. CNN 취재에 따르면 순례길을 걸으며 겪는 고행이 하지의 본질로 여겨지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보통 하루 반나절, 적어도 5시간을 매일 걷는다. 청년들도 버거울 정도다.

올해 폭염도 중요 원인으로 꼽힌다. 음력을 따르는 이슬람의 1년은 양력보다 11일 짧다. 이 때문에 일정 주기로 다른 계절에 하지가 열리는데, 최근 몇 년간 하지는 북반구에 여름이 찾아오는 6~8월에 열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하지 기간 사우디 현지 기온이 최고 51도에 육박했다면서 기후변화 탓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기상학회가 발표한 2021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사우디는 북반구 나머지 지역보다 50% 더 빠른 속도로 기온이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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