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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순례길, 암시장서 사기 당하는 순례자들━
사우디는 공식 허가를 받은 순례자들에게 냉방시설이 비치된 숙소와 이동수단,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NYT 취재에 따르면 허가 비용은 순례자 국적에 따라 5000~1만 달러(690만~1380만원)이다. 이에 대해 사우디 측은 안전한 순례를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하지 참가자는 180만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안전을 내세웠지만 허가를 위한 비용은 일반 순례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비용 감당이 힘든 순례자들은 암시장으로 향한다고 한다. 사우디는 하지 시작 몇 주 전 미허가 순례자를 차단하기 위한 봉쇄 조치에 들어가는데, 이보다 빠르게 사우디에 입국한 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브로커를 거쳐 순례길에 오른다는 것. NYT가 취재한 순례자들은 이 경로를 통해 2000~3000달러를 내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불법 순례길에 오른 이들은 안전 장치 부실로 사기 피해자로 전락하기 쉽다. 아무런 의료 조치 없이 사막을 가로질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NYT 취재에 응한 한 55세 이집트 남성은 여동생이 현지 여행사를 통해 불법으로 순례길에 올랐다면서 "여행사가 버스 제공을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땡볕을 직접 걸어야 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사망 소식을 듣고) 여행사에 항의하려고 전화를 걸어보니 전화기를 꺼놨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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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절반이 이집트…이유는 '통화 폭락' ━
유독 이집트 사망자가 많은 것은 이집트 통화가치 폭락 문제와 무관치 않다. 2011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던 이집트는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심각한 외화 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기존 고시환율제를 포기하고 환율 결정을 시장에 맡긴다는 조건을 걸고 IMF에 추가 자금을 신청했다.
지난 3월 이집트중앙은행(ECB)에서 환율 정책 변경을 공식 발표하자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했다. 하지를 위해 이집트 순례객들이 모은 계좌잔고 가치도 함께 폭락했다. 사우디 리얄화 대비 이집트 파운드 가치는 8.2파운드 수준이었다가 환율정책 변경을 발표한 3월6일 기준 13.1파운드까지 떨어졌다. 부모가 브로커를 통해 불법 순례를 떠났다는 한 이집트 여성은 NYT 인터뷰에서 "(부모가) 이집트 통화가치 하락으로 매년 저축계좌 잔고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빨리 떠나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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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 힘든 순례길, 기후변화 폭염으로 더 힘들어져━
올해 폭염도 중요 원인으로 꼽힌다. 음력을 따르는 이슬람의 1년은 양력보다 11일 짧다. 이 때문에 일정 주기로 다른 계절에 하지가 열리는데, 최근 몇 년간 하지는 북반구에 여름이 찾아오는 6~8월에 열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하지 기간 사우디 현지 기온이 최고 51도에 육박했다면서 기후변화 탓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기상학회가 발표한 2021년 연구자료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사우디는 북반구 나머지 지역보다 50% 더 빠른 속도로 기온이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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