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소라의 가이드'로 시작한 국내 최대 음란 사이트 '소라넷'은 2016년 서버가 폐쇄될 때까지 100만명 넘는 회원이 활동했다. 미성년자도 있었다. 17년 동안 불법 촬영, 리벤지 포르노, 집단 성관계 등 불법 음란물이 유통됐다.
소라넷은 음란 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붙이는 방식으로 범죄 수익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최악의 사이트로 평가된다. 도박, 성매매, 성인용품 등 사이트를 통한 광고 수익만 수백억원대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소라넷은 폐쇄됐지만 수익구조를 본떠 만든 음란사이트는 지금도 우후죽순이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온상 'N번방'도 그 중 하나다.
변민선 서울 성동경찰서장은 2015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소라넷 수사에 착수했다. 사이트 서버가 해외에 있고 운영자 대다수가 해외 도피 생활을 한 탓에 추적이 쉽지 않았다. 이들 운영진은 "해외 시민권자라 처벌 불가능",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수사를 비웃었다.
변 서장은 "음란물 시청·유포에 대한 처벌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아동 음란물에 대해선 한국보다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처벌 기준이 엄격하다는 점을 포착했다"며 "네덜란드 현지 경찰청과 공조해 120TB(테라바이트) 분량의 핵심 서버 15대를 압수하고 폐쇄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경찰은 2016년 소라넷 사이트를 폐쇄한 데 이어 2018년에는 주요 운영진 중 한국 여권을 소지한 1명을 구속하고 광고주, 회원 등 79명을 검거했다. 소라넷 수사는 음란 사이트에 대한 경찰의 수사 기법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국토안보부와는 미국 인터넷 음란물에 접속한 한국인 IP(인터넷 프로토콜) 정보를 제공받는 협약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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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수사대 창설 멤버 '사이버통' 경찰서장으로━
변 서장은 소라넷 수사 훨씬 전인 2000년 서울경찰청에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신설됐던 당시 이미 창설멤버로 사이버범죄 수사에 뛰어들었다. 이후에도 광주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서 사이버수사대장으로, 경찰청에서 사이버테러대응과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10여년을 사이버범죄 수사 분야에서 근무했다.
변 서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고 PC통신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며 "사이버범죄수사대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을 때부터 몸담아 함께 성장한 셈인데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뿌듯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변 서장이 부임하면서 서울 성동경찰서도 사이버범죄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올 3월 이른바 '리딩방' 등을 운영하며 80여명에게서 95억원을 가로챈 일당을 검거한 게 대표적인 성과다. 자금 세탁으로 숨겨진 금액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총 420억원에 달할 것으로 경찰은 추정한다.
성동경찰서는 성동구청, 통신사와 협업해 전국 최초로 '안심귀가를 위한 이동형 스마트 범죄예방 시스템', '가해자 접근방지 경고·설득 자동알림 시스템'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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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화 거리서 'MZ 성지' 된 성수동…달라진 치안 수요━
성동구는 왕십리를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 도심을 잇는 교통 요충지다. 과거에는 다소 낙후된 주거 지역이 주를 이뤘지만 왕십리 뉴타운, 옥수동·금호동 등 도시 정비를 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수제화 거리로 유명한 성수동은 최근 몇 년 사이 MZ세대가 즐겨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관내 특성이 변한 만큼 치안 수요도 달라졌다. 성수동, 서울숲 등지를 중심으로 공장 리모델링 카페와 팝업 스토어가 생기면서 절도, 성폭력, 주취자 관련 신고가 늘어난 데 따라 성동경찰서는 인파가 몰리는 주말마다 성수동 일대에 집중도보순찰을 진행하는 한편 자율방범연합대와 협업해 특별 범죄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변 서장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전화금융사기로 서장 부임 후 '피싱범죄 근절 추진팀'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며 "검거뿐 아니라 선제적인 범죄 예방을 위해 △금융기관·공공게시판에 홍보물 배포 △성동 스마트쉼터에 홍보영상 송출 등 유관기관, 민간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전개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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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경찰 "'제라지게' 일하는 경찰 될 것"━
변 서장은 경찰이라는 직업의 자긍심과 자존감이 업무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직원들 목소리를 듣는 데도 애쓰고 있다.
변 서장은 "올해 상반기 인사발령 이후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조사를 진행해 개선 사항을 취합,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동료 직원을 뽑는 '선행 동료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성과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 서장은 '어떤 경찰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뛰어나다'는 뜻의 제주도 방언인 '제라지게' 일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변 서장은 "제때, 제자리에서, 제대로 일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며 "성동경찰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경찰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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