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의대생에게도 '돌아오는 전공의에게 불이익이 최대한 없도록 하겠다', '의대생들의 유급을 최대한 막겠다'며 초강경 대응을 자제해온 정부가 16일 '구상권 청구'라는 날카로운 새 칼을 빼든 배경엔, 진료 거부로 인한 환자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물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1일 휴진'을 넘어 '무기한 휴진'이라는 새 카드를 내민 의사들에게 '구상권 청구'라는 초강수를 두겠다는 게 정부의 전략이다.
17일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18일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주축으로 한 전국 단위 휴진이 예고되면서 환자들의 피해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서울아산·삼성서울) 병원들도 저마다의 '무기한 휴진' 개시일을 정했거나, 휴진 여부 논의를 시작하면서 환자들의 불편은 가중될 전망이다.
먼저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17일부터 전국 최초로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기로 했다. 16일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산하 4개 병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의 휴진 참여 교수를 집계한 결과, 대면 진료하는( 전체 교수 967명 중 529명, 전체의 54.7%로 파악됐다(15일 오후 8시 기준).
이어 의협은 18일 전국 단위로 휴진하고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에서 총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집단휴진에는 개원의들을 포함해 40개 의과대학이 소속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전의교협 조사 결과, 이번 휴진에 참여하는 의과대학은 35곳, 병원은 50곳 이상이다(14일 기준). 이날 '빅5' 병원 교수들도 휴진과 총궐기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세브란스병원 등 연세대 의대 소속 교수들은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다. 세브란스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 소속 교수들은 "정부가 의료 및 의대 교육 사태를 해결하는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7일부터 응급·중증 환자 진료를 제외한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등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도 무기한 휴진을 논의한다. 전체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무기한 휴진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전체 교수 총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5일 "정부는 여전히 의료사태 해결을 위한 전향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의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삼성서울병원·강북삼성병원·삼성창원병원의 무기한 휴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의대 교수들도 추가 휴진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충북대 의대도 무기한 휴진에 동참한다.
환자 생명을 볼모로 잡은 의사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 회장은 "우리 희귀 중증질환 환자들은 100일 넘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다"며 "국가와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의사 집단을 정부는 더 이상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 집단들의 조직폭력배와 같은 행동을 보고, 죽을 때 죽더라도 학문과 도덕과 상식이 무너진 이 사회의 엘리트로 존재했던 의사 집단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겠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의사 집단의 불법 행동을 엄벌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1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는 각 대학병원장에게 '교수들의 집단 진료 거부에 대해 허락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또 앞으로 교수들의 집단 진료 거부가 장기화해 병원에 손실을 끼칠 경우에는 구상권 청구까지 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병원에서 집단 진료 거부 상황을 방치할 경우 건강보험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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