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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고급주택이 5억원"…27년째 '제자리'인 상속세 공제━
상속세를 접할 때 마주하는 '규정'이다. 상속세를 낼 때 기본 공제처럼 활용되는 게 배우자공제(5억~30억원)와 일괄공제(5억원) 조합이다. 피상속인(사망자) 재산 중 채무 등을 빼고 물려 받은 재산이 이 둘을 합한 최소금액 10억원을 넘으면 통상 상속세 납부대상으로 본다.
그런데 이 발언이 나온 게 무려 28년 전이다. 1996년 11월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차관이 국회에 나와 언급한 내용이다. 28년 동안 물가와 자산가치는 큰 폭으로 올랐지만 상속세의 대표 공제액은 변하지 않았다. 그 사이 '부자 세금'이었던 상속세는 '중산층 세금'이 됐다.
◇1996년 말 도입된 5억원의 상속세 일괄공제…물가·자산 급증했는데 '제자리'
상속세 공제의 역사는 1950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상속세법을 제정하면서 직계비속 기준 100만원의 기초공제를 담았다. 상속세에 공제가 존재하는 건 상속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채무를 빼고 물려 받을 재산이 공제액 이상일 경우 상속세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공제가 상속세의 문턱 역할을 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속세법)은 다양한 공제제도를 담고 있다. 우선 2억원의 기초공제가 있다. 그 외에 △자녀공제(1인당 5000만원) △미성년자공제(1인당 1000만원×19세까지의 잔여연수) △연로자공제(1인당 5000만원) △장애인공제(1인당 1000만원×기대여명 연수) 등 총 4종류의 인적공제가 있다.
여기에 5억원으로 설정된 일괄공제가 있다. 상속세법은 기초·인적공제를 합한 금액과 일괄공제 중 큰 금액을 공제한다고 규정한다. 대부분 일괄공제가 적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녀공제만 해도 1인당 5000만원을 공제하기 때문에 자녀가 7명(3억5000만원)이어야 기초공제(2억원)를 합한 금액이 일괄공제(5억원)보다 많아진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일괄공제 5억원이 유지되고 있는 건 제도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 그 사이 자녀공제는 1인당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미성년자 공제는 1인당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장애인공제는 1인당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랐다. 재료값이 바뀌었는데 결과값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슈퍼리치를 염두에 두고 만든 상속세…이제는 중산층 세금
물가와 자산가치의 증가만 따져도 일괄공제 5억원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1997년과 2021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비교해 일괄 공제금액 5억원을 현재 화폐가치 변화로 추정할 때 2023년 일괄공제 금액은 8억4050억원이 적정하다는 연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급격한 자산가치 변화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1996년 말 당시 고급주택의 기준은 50평형, 5억원이었다. 지금은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이 10억원을 넘는다. 집값 상승으로 자산가치는 최근 더 빠르게 상승 중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의 평균 순자산(자산-부채)은 2012년 2억6875억원에서 2022년 4억5602만원으로 늘었다.
이같은 영향으로 2005년까지만 해도 0.80%에 머물렀던 상속세 과세비율은 2022년 4.53%까지 늘었다. 특히 집값이 폭등한 서울의 경우 상속세 과세비율이 2022년 기준 13.96%까지 상승했다. 서울만 놓고 봤을 때 7명 중 1명은 상속세를 낸다는 의미다.
배우자 공제를 두고서도 논란이 적잖다. 현행 배우자공제는 5억원에서 30억원까지다. 배우자공제 금액 역시 1997년부터 유지되고 있다. 특히 1주택자의 경우 양도차익을 실현하지 못한 채 세금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배우자에게 한도 없이 상속세를 면제해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행)상속세가 도입됐을 당시는 자산가치가 지금의 10분의 1이 됐을까 싶은데, 지난 20여년 동안 자산규모가 훨씬 더 확대됐다"며 "슈퍼리치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건데 지금은 중산층 과세가 됐고, 공제금액이 미국 등에 비해 너무 낮기 때문에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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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88억까지 상속세 면제…한국만 역행하는 상속세━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수준이다. 자산 가격이 뛰고 물가가 올라도 기본공제액은 27년간 제자리걸음이다. 미국·영국 등 주요 국가가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상속세 공제액을 조정하는 것과 대비된다. 세율은 높고 공제액은 줄다보니 실질 세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
12일 정부와 OECD 등에 따르면 OECD 38개국의 평균 상속세율은 26%다.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없는 국가까지 포함하면 OECD 평균 상속세율은 13%로 낮아진다.
우리나라의 최고 상속세율은 50%다.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최대주주의 경우 상속평가액에 20%를 가산해 세금을 물리고 있어 최고 60%의 상속세율을 적용 받는다. 실제 세율은 일본보다 높은 셈이다.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24개국이다. 24개국 가운데 △한국 △덴마크 △미국 △영국 등은 유산세 방식을 취한다.
유산세 방식은 상속인들에게 상속재산을 분할하기 이전에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총액에 과세해 세액을 결정한다.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에 배우자공제, 미성년자공제와 같은 인적공제 등을 합산 적용해 과세표준을 산정한 뒤 세액을 산출한다. 피상속인에 대한 사후 정산 성격이 짙다.
그밖에 20개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매긴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재산이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발생한 소득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취득한 상속인을 대상으로 과세한다. 캐나다와 스웨덴, 호주 등은 상속세가 없다.
김영순 인하대 교수가 작성한 '상속세제 과세방식별 공제제도 비교연구' 보고서를 보면 각국의 총 세입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2019년 기준)으로 0.6%를 넘지 않는다.
상속세 비중이 높은 국가는 △한국 △벨기에 △프랑스 △일본 등이 있다. 해당 국가들의 특징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배우자나 자녀에게 인정하는 인적 공제 혜택이 적다는 점이다. 반면 인적공제 혜택을 넓게 허용하는 이탈리아나 그리스는 전체 세입에서 상속세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유산세 방식을 취하는 국가 중 배우자 공제 한도를 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다른 국가들은 배우자의 상속세를 전부 면제한다. 부부간 상속재산의 이전은 동일 세대간의 이전이기 때문에 '1세대 1회' 과세 원칙을 지키는 차원이다. 또 혼인생활 중 재산 축적을 위한 생존 배우자의 기여도를 인정한다는 취지도 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영국은 상속재산 전체에 대해 유산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과세한다. 상속재산 32만5000 파운드(약 5억7000만원) 이하까지는 0%의 세율이 적용된다. 초과분에 대해선 40%의 단일세율이 적용된다.
2000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면세점을 올려왔고 2009년부터 동결됐다. 생전 증여를 한다면 피상속인 사망 전 7년 이내에서 기간에 따라 세율이 다르게 적용된다. 배우자간 재산 이전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면제한다. 상속인이 영국 거주자가 아니라면 32만5000파운드(약 5억7000만원)에 한해 면제한다.
미국은 개인이 생전과 사후에 이전한 모든 자산의 가치에 대해 통합 상속세와 증여세를 부과한다. 최고세율은 40%이다. 2018년 트럼프 정부가 개정세법(TCJA)을 시행하면서 상속세 공제한도는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공제한도는 매년 물가를 반영해 조정된다. 올해 최대 면세한도는 1361만달러(약 187억원)로 지난해(1292만달러)보다 69만달러 늘었다. 부모 각각에게 모두 받을 경우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공제액은 2722만달러(약 375억원)에 달한다.
상속세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피상속인이나 증여자가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자산을 이전한다면 '세대 생략 이전세'(GSTT)를 부과한다. GSTT 세율과 공제금액은 피상속인의 사망 시 상속재산에 적용되는 세율과 동일하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OECD 국가 절반 이상이 상속세에 물가연동제를 적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공제액을 올리지 않고 정책적인 수단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기본적으로 물가에 반영해 공제액을 맞추는 것이 중립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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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극한 대치 속에도 '상속세 완화'엔 공감...각론에선 이견━
보수여당 뿐 아니라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상속세 완화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제22대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최대주주 20% 할증 폐지나 기업상속 공제 확대에 대해선 여전히 반대하고 있지만 집값 상승으로 상속세 부담이 커진 이른바 '집 한 채 중산층'의 세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종합부동산세(종부세)·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과 함께 상속세를 개편이 필요한 세금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룰 국회 내 연구모임을 발족, 법안을 발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4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초부자 상속세 감세보다 중산층의 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2021년 19%, 2022년 17% 넘게 오르며 상속 재산가액 5억~10억원 사이의 과세 대상자가 49.5% 늘어났고 이 구간에 속하는 상속세 결정세액은 68.8% 급증했지만, 일반 상속세 일괄공제 규모는 5억원에 머물렀다"고 지적하며 중산층 가구의 상속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세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을 지낸 임 원내부대표는 "상속세 감세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초부자 상속세 감세고 다른 하나는 일반 상속세 감세다"며 "현재 윤석열정부는 2년 만에 또 초부자 상속세 감세를 추진한다"고 지적하며 민주당이 추진하는 세법 개정이 정부안과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 "제도 변화의 정책적 실효성과 사회 파급효과 등에 대한 정밀한 연구 분석 없이 초부자 상속세 감세를 추진하면 졸속 우려가 크다"고 했다.
현행 세법상 10억원 상당의 집 한 채를 자녀가 상속받을 경우(일괄공제만 적용시) 공제금 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5억원에 대해 상속세가 부과된다. 1억원 이하 분에 대한 세율은 10%고 1억원 초과 5억원 이하 분의 세율은 20%다. 5억원을 넘는 나머지 5억원에 대한 상속세는 1억원의 10%에 해당하는 1000만원과 나머지 4억원의 20%인 8000만원이 부과돼 총 9000만원의 상속세가 매겨진다.
그러나 집값이 15억원으로 오른 경우 10억원까지는 동일한 세율이 적용되고 나머지 5억원에 대해선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30% 구간의 세율 30%가 적용돼 1억5000만원의 세금이 더해져 총 2억4000만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집값이 20억원이면 15억원까지는 동일한 세율이 적용되고 추가 5억원에 대해선 10억원 초과 30억원 구간의 세율 40%가 매겨져 상속세는 집값 15억원일 때보다 2억원 뛴 4억4000만원이 된다.
최근 몇년 사이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도시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상속세의 이런 누진 구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은퇴 후 소득이 없는 노년의 자녀가 상속받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상속세 개편 요구로 높아진 이유다.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상임위원회 배분 갈등이 지나면 상속세 관련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과세표준은 유지한 채 상속세 일괄공제 규모를 2~3억원 정도 상향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당 안팎에서는 대규모 개편이 필요다는 주장도 고개를 든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민주당이 상속세 개편을 부자감세라며 반대해왔는데 중산층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고세율과 과표구간은 24년째, 상속세 일괄 공제 25억원은 28년째 고정"이라며 "최대주주 할증을 포함한 기업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60%에 이를 정도로 가혹해 기업의 투자와 고용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소위 동학개미들의 자산 증식까지 방해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상속세 완화론자로 꼽히는 황희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과도한 상속세로 인해 불·탈법이 자행되고 있는데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24% 수준으로만 낮추면 (승계를 위해서라도) 범죄는 줄고 세수는 더 걷힐 것"이라며 "진보진영도 상속세와 관련해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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