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조 지위 없다고 봐야"...레미콘노조 부정한 결정문 보니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4.06.12 11:20

경기지노위, "레미콘노조, 노조 지위 없어" 첫 공식 판단
레미콘 차주,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
용인시의 노조 설립허가 무관…"노조로서 실질 요건 갖추지 못해"

2021년 6월 대구의 한 레미콘 제조 공장에 파업으로 발 묶인 레미콘 믹서트럭들이 주차돼 있다. 당시 믹서트럭 차주들은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사진=뉴스1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위원회가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운송노조)은 노조로서 '실질 요건'을 갖추지 못해 노동조합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운송노조가 스스로 적법한 노조이고, 레미콘 차주들도 근로자라고 항변한 논리가 조목조목 뒤집혔다.

레미콘 제조사들과 운송단가 협상을 앞두고 있는 운송노조의 노조 지위가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단체협상과 단체행동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12일 본지가 확보한 경기지노위의 레미콘 운송노조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신청' 기각 결정문에 따르면 지노위는 레미콘 차주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돼 신청인 적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운송노조는 이달 초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들에 운송비 단체협상을 하자는 공문을 보냈다. 사측은 관련법상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으면, 그 사실을 사업장 게시판 등에 공고해야 하지만 하지 않았고 운송노조는 경기지노위에 공고를 강제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경기지노위는 운송노조의 회원들이 근로자가 아니고, 운송노조에 노조 지위가 없기 때문에 신청 자격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운송노조의 회원들은 영업용 레미콘차량 차주들이다. 전국 레미콘 트럭의 85.9%(지난해 기준)는 개인사업자 자격인 레미콘 차주들이 운행한다. 이들은 본인 명의의 레미콘 트럭을 갖고, 제조사들과 도급계약을 맺어 레미콘을 운반한다.

이들은 법적 지위는 사업자지만, 레미콘 제조사들에서 운반비를 임금처럼 받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에도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자신들이 근로자라고 주장해왔다. 경기도 용인시가 내준 노동조합 설립허가증을 토대로, 본인들이 적법한 노조이며 매년 제조사들을 상대로 운반비 단체협상을 해왔다. 협상이 부진하면 파업을 예고했다. 2022년에는 생존권사수결의대회와 파업으로 전국의 레미콘공장들이 셧다운 직전까지 몰렸었다.

레미콘 제조사들은 용인시의 노조 설립허가가 행정착오이고, 운송노조의 활동범위가 경기도 전역인 점을 감안하면 용인시가 아니라 경기도지사 명의의 설립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노위는 이점에 관해선 "노조가 설립허가증이 없더라도 일정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 뿐 노동기본권의 일반적인 권리까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노위는 "적법한 노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는 노조로서 실질 요건을 갖췄는지에 달렸다"며 "설립신고를 행정관청이 형식상 수리했더라도 실질 요건의 하자가 있으면 노조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법상 근로자로 판단되려면 △사업자와 노무제공자 사이 지위·감독 관계 존재 △사업자가 노무제공자의 임금 등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 등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지노위는 레미콘 차주들이 1억5000만원 상당의 자기 차량을 소유하고,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했으며, 차량의 번호판과 권리금, 마당비를 수천만원에 거래하는 점을 감안할 때 레미콘 차주가 법원이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방송작가와 학습지 교사, 자동차 판매사원 등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판단했다.

레미콘 차주들이 대리 운송기사를 고용해 자기 차량을 운행하도록 한 점도 노조법상 근로자로 판단할 수 없는 근거가 됐다. 실제로 운송노조의 임영택 위원장을 비롯해 일부 본부장들은 대리운전기사를 고용해 자신 소유의 레미콘 트럭을 운행시킨다.

지노위는 하루 레미콘 운반 물량을 레미콘 제조사들이 아니라 차주들의 자율적인 조직인 상조회가 결정하는 점을 감안할 때 제조사와 차주가 통제·감독 관계에 있지 않다고 봤다. 또 임금 등 계약내용을 제조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주들과의 동등한 위치에서 맺는다고 판단했다.

지노위는 2006년 대법원이 "레미콘 기사는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에서 "판결을 번복할 새로운 사정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운송노조와 레미콘 제조사들은 1~2년 터울로 운송비 단체협상을 해왔다. 그동안 제조사들이 교섭사실을 공고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운송노조가 행정기관의 강제를 구하다 스스로 노조의 지위를 부정당한 셈이 됐다. 지노위의 결정으로 레미콘 노조처럼 차주들이 결성한 민주노총 화물연대 등의 파업도 명분이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노조가 단체협상을 할 지위를 잃었다"며 "당사와 계약된 운송기사들의 상조회와 개별협상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최근 골재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는데 레미콘 판매는 줄어 추가적인 운송비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며 "올해 운송비는 반드시 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운송기사들은 건설경기가 위축돼 레미콘 운반량이 줄면서 생계가 위협받아 운송비 인상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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