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주주 이해충돌땐 '손배·배임'…보호 못받는 '이사'될라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 2024.06.11 05:20

재계 '정부 상법 개정 추진' 반대 이유는
신주발행·주주환원 등 리스크 달라…소송 남발 우려
이중적 충실의무 부담, 과감·신속한 의사결정 어려워

(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하며 질의에 답하고 있다.2024.5.2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정부가 상법을 개정해 기업 이사회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려는 것은 소액주주들의 요구가 반영된 정책이다. 기업 경영의 책임을 지는 이사들이 회사 뿐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생기는 셈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0일 공개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LG화학 물적분할 과정은 이같은 움직임의 단초가 됐다. 당시 물적분할을 결의하면서 신설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을 발표했는데, '알짜 사업부'를 떼어냈다는 평가 속에서 LG화학 주가가가 급락했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 소수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관련 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후 소수주주 보호 방안 중 하나로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 개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재계는 주주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법제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입장이다. 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 남발을 우려한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주주들의 지분 보유목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배당과 대규모 투자, 전략적 인수합병(M&A) 등 경영 활동에 대해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결국 어떤 경영상 판단이든 일부 주주에게는 충실의무 위반이 될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주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회사에 이익이 되지만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시켜 주주 입장에선 손해다. 반대로, 배당,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 정책은 주주에겐 이익이지만 회사는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사진이 회사에 끼칠 손실을 피하려고 주주에 손실을 입히면 민사상 손해배상 리스크를 안게 되고, 거꾸로 주주 손실을 막으려다 회사에 손해가 발행하면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결국, 회사와 일부 주주간 이해가 상충할 때 이사진은 리스크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사 충실의무 관련 해외 주요국 사례/그래픽=윤선정

다양한 경영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소액주주는 배당 확대나 당장의 이익 분배를 요구하고 지배주주는 이익을 회사에 장기간 유보할 것을 주장할 수 있는데, 이사가 이런 주주 간 이해충돌을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이사는 다양한 주주들로부터 충실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소송을 당할 수 있는데, 회사는 이에 대비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을 들어야 한다. 이런 비용은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전가될 수 밖에 없다.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중적 충실의무를 부과하려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일본과 독일은 이사에게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부과한다. 이사의 배임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있다. 영국 역시 회사법상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지며, 회사 손실 관련 배임죄 조항도 없다 . 미국의 24개주가 따르는 모범회사법도 회사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단, 델라웨어 등 일부 주들은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중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는데, 대신 배임죄 규정이 없어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이 상법을 개정한다면 주요국 중 회사·주주에 대한 이중 충실의무를 기업인에게 부담시키면서 배임죄 처벌 조항까지 둔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같은 상법개정이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대법원 판례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엄격히 구별되며, 회사의 이사는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지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상법이 개정돼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추가되면 법원의 기존 법 해석과 정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자본 다수결 원칙'(주총에서 1주 1의결권 원칙에 따라 모든 주주가 보유한 지분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다수결 원리에 의해 안건을 최종 결의)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개정안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 함은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뜻이 달라도 이사가 소수주주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이렇게 되면 소수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보유 지분 대비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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