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분석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쏟아지는 국내외 리스크에 '복합 위기'를 거론하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은 지난 4월부터 주 6일 근무를 시작했다. SK그룹은 24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하고 고강도 쇄신에 나섰다.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첫 전사 희망퇴직을 받았다. 올해 격주 주 4일제를 도입했던 포스코는 최근 임원 근무를 다시 주 5일제로 전환했다.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올해 70~74 수준으로 최근 20년 장기평균(79)보다 크게 낮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이하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53.5%)이 "최근 5년 사이 국내외 리스크가 확대됐다"고 답했다. 코로나 사태 영향은 고려하지 않은 응답 결과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통화당국도 한·미 금리 격차와 경기 상황을 고려한 통화정책에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대비 120%를 넘는 기업부채는 지금처럼 고금리 상황에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출기업 입장에선 러시아·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큰 리스크다. 국제 분쟁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 세계 경제 위축을 야기하기 때문에 한국 수출기업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다. 전쟁 영향으로 출렁이는 환율과 국제유가 역시 기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11월 미국 대선 결과도 경영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국내 정치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야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횡재세 부과 법안 등 기업 부담을 늘리는 각종 법안들이 처리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산업계가 기대했던 법인세 인하 등 입법 과제는 추진 동력이 축소됐다. 기업에 힘을 실어줄 각종 규제 개혁 법안 역시 처리를 낙관할 수 없다.
정부·국회의 미흡한 리스크 관리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개별 기업이 결국 스스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실행이 만만치 않다.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기업이 리스크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19.6%(잘하고 있다 19.3%, 매우 잘하고 있다 0.3%)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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