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바라온 국민과 환자들은 또다시 의정 갈등의 '볼모'로 잡혔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서울대병원 등 '선배 의사'들은 집단휴진을 앞세워 대정부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명령 철회와 처분 중단 등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반대로 의사 단체는 단체행동을 강화하며 갈등을 키우려는 모양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서울대병원 비대위)와 의협은 각각 오는 17일 무기한 전체 휴진, 18일 전면 진료 거부 후 총궐기 대회에 돌입한다. 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전공의 처분 취소를, 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의 저지를 집단 휴진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특히, 의협이 주도하는 총파업은 개원의뿐 아니라 전국 의대 교수의 참여도 예상되는 만큼 파급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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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봉합하려는 정부 vs 키우려는 의사━
하지만, 정부의 결정 이후 기성 의사의 집단행동 규모는 되려 확대됐다. 일각에서는 의사 단체가 사실상 의정 갈등이 수습되길 원치 않는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실제 조병욱 의협 대의원회 경기도 중앙대의원(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은 전날 '의료붕괴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택시나 버스 파업처럼 국민이 불편함을 겪어야 집단행동에 문제가 발생하고 문제의식을 느끼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국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의사들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정부에게 이야기한다"고 정부와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그는 "의대 교수들이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환자를 보되 주당 40시간을 지키면 분명히 어디에선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이 보기에 잘못된 게 아니라고 착각한다. 교수들의 희생을 그만하고 더 강한 움직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개원가에는 단기간(핀포인트) 휴진으로는 국민이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장기 파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의료공백이 길어져 병원·제약사·의료기기 업체가 도산해야 정부에 의견을 관철할 수 있다고 보는 의사도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의사들이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들을 내걸며 '늦깎이 파업'에 나서는 것을 두고 국민과 환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대 증원 저지에 실패한 의사들이 향후 정부의 의료 정책에 대한 발언권과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휴진을 선택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겉으로는 여러 명분을 앞세우지만 의대 증원에 아직도 반대하는 게 의사 집단의 속마음"이라며 "정부에게 떼쓰고 화풀이하며 현실성 없는 요구를 하는데 의사에게 도움이 되지도, 바뀌는 것도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의사의 집단휴진은 누가 보아도 억지이고 명분이 없다"며 "의협과 전공의 등 의사단체는 더 이상 환자 생명을 볼모로 강 대 강 대치를 연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이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정부가 의사에게 새로운 출구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대로라면 의료공백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 의료계 원로 인사는 "이대로 의정 갈등이 지속되면 내년에도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가장 첨예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교육·실습 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증원 규모를 재논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활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선배 의사들도 휴진보다는 전공의를 교육생으로 인식하고 정부 정책에 참여·감시하는 게 후배들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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