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산 신약을 보호해야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 | 2024.06.07 10:29
최근 특허심판원이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 화합물(물질)특허 심판에서 오리지널 제품 개발사인 HK이노엔의 손을 들어줬다는 소식을 접했다. HK이노엔은 보도자료를 통해 특허심판원의 이번 결정을 환영하면서 '만약 이번 심판에서 패소했다면 신약의 연장된 특허권을 지나치게 축소시켜 물질특허권자들이 후속 연구를 포기하는 부정적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HK이노엔의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은 2018년에 허가된 위식도역류질환 신약이다. 개발에 약 10여 년의 기간이 소요됐고 2019년 300억 원대 처방 실적에서 지난 해 150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제품이다.

제네릭 제품을 출시하려는 기업들은 이 시장 성장세를 눈 여겨 보고 오리지널제품인 케이캡을 상대로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 심판을 청구해왔다. 케이캡의 특허를 깨 조금이라도 일찍 제품을 출시할 목적이었다.

케이캡에는 크게 물질특허, 결정형특허가 있다. 이 중 물질특허 존속기간은 의약품 연구개발에 소요된 기간을 인정받아 기존 2026년 12월 6일에서 2031년 8월 25일까지 연장됐다. 특허 심판을 제기한 기업들은 2026년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케이캡의 허가 적응증 중 최초 허가적응증을 제외하고 후속 허가 적응증으로만 출시하는 일명 '적응증 쪼개기'전략으로 케이캡 특허에 도전했다.

이 기업들은 케이캡의 존속기간이 연장된 물질특허권 효력이 후속 허가 적응증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리지널 제품인 케이캡이 순차적으로 늘려온 5개의 적응증 중 허가 당시 받았던 '위식도역류질환' 적응증에 한해서만 존속기간 연장 효력이 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허가 받은 '위궤양' 등의 적응증은 그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60여 개의 회사들이 케이캡 특허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우리나라 제약산업 앞 날이 걱정됐다. 이제야 하나 둘씩 세계로 진출하는 국산 신약들이 나오는 판국에 아직도 대다수의 기업들이 신약개발이라는 '빛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값싸게 제네릭을 만드는 '쉽지만 암울한 길'로 가고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업계 관심이 집중된 이번 화합물(물질)특허 심판에서 특허심판원은 HK이노엔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심판원은 존속기간이 연장된 특허권의 효력 범위에 관한 수많은 공방 속에서도 기존 특허심판원 입장을 유지했다. 필자는 특허심판원이 국산 신약 가치를 온전히 인정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국내 제약시장은 다국적 기업들이 오리지널제품을, 국내 기업들은 그의 제네릭을 판매하는 구조였다. 특허법도 오리지널제품 특허권을 보유한 기업들보다는 제네릭 위주의 사업을 펼치던 국내기업들이 좀 더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석돼 온 측면이 많았다. 여기에는 당시 자국 제약산업을 지키고, 키우려는 의미도 컸다.


정부에서 다양한 신약개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도 신약개발이라는 거대한 도전보다는 제네릭 판매라는 쉬운 길을 택하게 만드는 법과 제도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1977년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 의약품 제조·품질기준)가 도입되면서 획기적인 품질 향상과 현대 제약산업 면모를 갖췄다. 1999년부터는 국산 신약 1호 선플라주를 시작으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속속 신약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까지 37개의 국산 신약이 개발됐다.

국내 기업들이 신약을 선보여도 그동안 약물의 낮은 시장성 및 사업전략 부족, 제도적 한계 등의 이유로 국내에서조차 빛을 못 보고 저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대형 신약으로 우뚝 서고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하는 신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제30호 신약 케이캡(HK이노엔)도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가 자체 신약을 갖게 된 지금은 특허법의 해석이나 운용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 다국적 기업 특허를 깨 국내 제약기업들의 제네릭 개발을 도왔다면, 이제는 신약을 개발해낸 국내 제약 기업을 보호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전환점에 섰다. 오리지널의약품 가치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국제적 기준에 맞게 우리나라 특허법의 해석과 운용도 달라져야 한다.

신약을 개발한 기업이 또다른 신약을 선보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성공을 본 다른 기업들도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정부)는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할 때다. 신약 강국을 만들려면 기업이 신약을 개발할 수밖에 없도록 국가가 법과 제도 구축 및 개편 등으로 지원해야한다.

제약바이오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자국 제약산업을 지키고, 글로벌 시장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길을 오랫동안 빛나게 갈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베스트 클릭

  1. 1 1000도 화산재 기둥 '펑'…"지옥 같았다" 단풍놀이 갔다 주검으로[뉴스속오늘]
  2. 2 [단독]유승준 '또' 한국행 거부 당했다…"대법서 두차례나 승소했는데"
  3. 3 "임신한 딸이 계단 청소를?"…머리채 잡은 장모 고소한 사위
  4. 4 "대한민국이 날 버렸어" 홍명보의 말…안정환 과거 '일침' 재조명
  5. 5 "봉하마을 뒷산 절벽서 뛰어내려"…중학교 시험지 예문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