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의 전설'이자 '테슬라의 적'으로 불렸던 짐 차노스 전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 회장은 테슬라의 주가 하락을 점치며 공매도 투자를 하다 큰 손실을 봤다. 급기야 지난해 말엔 약 40년간 운영했던 헤지펀드를 폐쇄, 차노스는 펀드 투자자들에게 남은 현금의 90%를 돌려주고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8년 60억달러(한화 약 8조2600억원) 이상이던 이 헤지펀드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2억달러(약 280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거듭하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이 설 곳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가 하락에 베팅해 수익을 챙기는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유명세를 탔던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잇따라 활동을 중단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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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제왕들' 잇단 굴욕…"공매도 죽어간다" 외침도━
기업의 과도한 부채, 잘못된 회계처리, 부정적 현금흐름 등을 직접 파헤쳐 공개 저격해온 행동주의 공매도 펀드 운용사들이 활동을 접거나 다른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차노스 전 회장이 펀드 운용을 중단하고 투자 업계를 떠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1년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의 파산을 예견하고 주가 하락에 베팅해 큰 돈을 벌었던 차노스의 퇴장은 강세장에서 공매도 전략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의료 벤처기업 나녹스와 중국 전기차 니오 등을 저격해 유명세를 탄 행동주의 공매도 헤지펀드 시트론리서치의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이 헤지펀드는 지난 2021년 밈 주식인 '게임스톱'의 기업 가치에 의문을 표하며 공매도 공격에 나섰다가 '개미 군단'(개인 투자자들)의 매수 반격에 큰 손실을 보는 굴욕을 당한 뒤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트론리서치 창업자인 앤드류 레프트는 최근 블룸버그에 "공매도는 죽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명 공매도 투자자인 칼슨 블록이 이끄는 머디워터스가 최근 첫 매수 전용 펀드를 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알려진 루이싱커피의 회계 부실을 고발해 미국 나스닥 상장폐지를 이끄는 등 '중국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운용사가 주식을 매수하는 전략으로 180도 돌아선 것에 시장은 놀라는 분위기다.
행동주의 공매도 투자가 줄어든 건 통계로도 확인이 된다.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리서치 업체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16년 265건에 달했던 전 세계 기업들에 대한 공매도 공격 건수는 지난해 110건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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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뚫린 증시서 못 버텨…"공매도=악당? 억울해"━
JP모건체이스의 전략가 니콜라오스 파니기르초글루는 "증시의 대규모 확장은 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공매도 전략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같은 시장에선 공매도를 치는 약세론자들이 꽤 오랜 기간 수수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공매도 헤지펀드가 잠재적인 시장조작 혐의로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와 감시 대상이라는 것도 한 요인이다. 시트론리서치의 레프트 창업자는 "공매도를 했다는 이유로 법무부 조사를 받고 있다"며 "또 공매도는 끊임없는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안 좋은 사업 모델"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기업, 당국은 물론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다. 차노스 전 회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특별한 가치가 없는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을 악당으로 몰며 비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게임스톱 등 밈 주식 사태로 진짜 피해를 본 것은 공매도였고 이로 인해 산업 전체가 약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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