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카펜터스' 악뮤의 데뷔 10주년 미니앨범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 2024.06.04 09:50

독특하면서 쉬운 음악으로 또다시 귀환

사진=YG엔터테인먼트


악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들은 오래 들을 음악을 하려는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장 차트 상위권에 올라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악이 아닌, 몇십 년 뒤에도 질리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 듣게 될 그런 음악. 데뷔 후 10년 동안 악뮤의 이름으로 정규앨범 세 장, 미니앨범 세 장만을 내놓는 비교적 더딘 행보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한 장을 만들어도 함부로 내지 않겠다는 뜻이며, 발매 뒤엔 후회하지 않을 음악만 내겠다는 뜻이리라. 이찬혁의 이러한 장인 정신과 이수현의 천부적인 음색, 가창력의 조화는 결국 악뮤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만들어내 대중음악 신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여기까지 오는데 딱 10년이 걸렸다.


악뮤를 가리켜 종종 한국의 카펜터스라고 부른다. 멀리 현이와 덕이라는 남매 듀오도 있지만, 거긴 오빠보다 동생이 송라이터로서 더 눈부셨기에 비교하기가 난감하다. 물론 이수현과 캐런 카펜터의 음색 및 노래 스타일은 저마다이고, 리처드 카펜터와 이찬혁의 작곡 기반도 많이 다르다. 오빠가 동생의 인기를 질투하거나, 동생이 오빠보다 먼저 삶을 마감한 일도 악뮤에겐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은 오빠의 송라이터로서 재능과 여동생의 싱어로서 재능이 성공으로 이어진 궤적이 비슷하다는 뜻에서, 또는 만들긴 어렵지만 듣기엔 쉬운 음악을 꾸준히 써낸다는 점에서 두 남매 듀오를 비슷하게 여기는 것일 게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그런 듣기 쉬운 음악은 악뮤가 누리는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에서 나온다. 이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다. 가령 ‘ALIEN’ 같은 디스코 곡이 대표하듯 남매는 장르 흡수에 거리낌이 없으며, 뮤직비디오 제작에 진심인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코러스 라인에도 진심을 담은 게 느껴진다. 근래 곡들로 예를 든다면 어린이 TV 프로그램용 스튜디오 마냥 꾸민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던 바삭한 신스팝 넘버 ‘Love Lee’와 카니발의 ‘거위의 꿈’, 패닉의 ‘달팽이’, 바비킴의 ‘고래의 꿈’, 화이트의 ‘네모의 꿈’을 ‘계란 프라이’에 통과시켜 귀여운 상상을 펼쳐나간 ‘후라이의 꿈’이 대표적이다. ‘Love Lee’와 ‘후라이의 꿈’은 지금 들어볼 악뮤의 세 번째 미니앨범 ‘LOVE EPISODE’에도 수록됐다.



제목 그대로 이번 악뮤의 음악 에피소드는 사랑의 네 가지 상황, 감정을 다루고 있다. 즉 사랑의 설렘과 투정, 딸기 케이크가 선물하는 다툼 뒤 평화, 그리고 다소 공격적인 사랑 고백까지를 포함한다. 이찬혁은 이 네 곡에서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기본 밴드 편성에 피아노와 키보드, 퍼커션과 신시사이저를 두루 보태며 예쁘고 투명한 사운드 디자인을 일궈냈다(그 과정에서 박재범의 프로그래밍도 한 차례 등장한다.) 여기에 솜사탕 같은 이수현의 노래와 2022년 솔로 앨범 때처럼 자이언티를 닮은 이찬혁의 음색이 어우러지며 악뮤만의 ‘담백한 이지리스닝’의 전형은 완성된다. 특히 안데르센과 디즈니 느낌이 나는 뮤직비디오를 앞세운 ‘Hero’의 어쿠스틱 기반 팝 그루브는 우기(WOOGIE)가 모든 연주를 주도한 ‘케익의 평화’에 녹인 달콤한 바이브로 이어지는데, 이런 우기의 원맨쇼는 기타 대신 건반이 이끄는 ‘답답해’에서 무션(moocean)이 보여준 원맨쇼와 비교해도 듣는 재미가 있다. 내 경우엔 아기자기한 센스 면에서 우기 쪽을 좀 더 즐겁게 들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자칫 너무 매끈하고 깨끗한 음악은 되레 그 무결점 때문에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악뮤의 음악은 그럼에도 앞서 말한 ‘오래 들을 음악’을 지향해서인지 그런 부담이 많이 희석되어 우리 앞에 온다. 잘 빠지고 듣기 좋은 음악으로만 치면 이들 것 외에도 수없이 태어나는 세상에서(당장 세계적인 송캠프를 보유한 케이팝 아이돌 쪽만 따져 봐도 수두룩하다) 악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남매의 그림 같은 듀엣 보컬과 곡을 끄집어낼 아이디어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예컨대 ‘전쟁터’ 같은 곡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재즈, 팝, 힙합을 뮤지컬의 세계로 초대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같은 곡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 이번 미니앨범에선 ‘케익의 평화’와 ‘후라이의 꿈’을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프엑스의 ‘피노키오 (Danger)’ 후렴구가 떠오르는 버스(verse)의 짤막한 보컬 라인이 재밌는 펑키 팝 트랙 ‘롱디’의 편안한 흥은 그 개성 있는 아이디어들이 무리 없이 대중에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윤활유에 가깝다. 독특하고 어려우면 대중이 난해하게 느끼지만, 독특한데 쉬우면 대중은 호감을 갖는다. 그런 뒤 마음을 연다. 지난 10년간 악뮤는 그런 음악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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