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웅' 그들이 떠나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건희 기자 | 2024.06.03 05:15
(서울=뉴스1) =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29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5차 회의' 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24.5.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대전 유성구 연구단지 취재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 기사가 말을 걸었다.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여기 다 모여있어요. 로켓 만든 뉴스 보셨죠? 나라 발전이 여기서 다 시작돼요. 다른 게 영웅이 아니예요." 기사의 눈길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시민의 자랑거리'였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들이 연구원을 이탈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출연연 퇴사 인원은 총 720명. 대부분이 대학 등 학계나 기업연구소 등 산업계로 향했다. 지난달 29일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태스크포스) 회의'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출연연의 젊은 연구원들이 연구자로서 가장 원했던 건 '자율성'이었지만, 정작 연구에 투입돼보니 대형 R&D(연구·개발) 과제를 수주받아 인건비라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지상 과제가 됐다. 한 연구자는 "대형과제 수주가 우선이 되다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못하게 된 젊은 연구자들은 출연연을 떠난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자도 "개인의 역량이나 창의성에 기반한 원천 연구는 대형과제에 비해 피드백도 느리고 시도 가능성도 낮더라"고 했다.

연차가 훨씬 높은 이들도 비슷한 지적을 내놓는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은 "돈 잘 따오는 연구자가 우수한 연구자라는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 20여년간 이어졌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연구보단 '절대'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연구만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는 R&D 예산도 일괄 감축됐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연구자로서의 목표보단 과제 '이삭 줍기'라도 해서 재원을 확보해야할 상황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도전하라고 말한다. 내년 R&D 예산의 5%를 '혁신도전형 R&D'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혁신도전형 R&D는 실패 가능성이 높지만 성공 시 혁신적 파급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R&D다.

안정을 강요해온 R&D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연구자가 다시 실패에 도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최고의 인재'고 로켓을 쏘아올린 '영웅'이다. 진정 '혁신'을 원한다면, 연구자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기존 시스템에 '도전'할 때다.

박건희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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